北에서 온 여성들 南에서의 고민 탈북여성 앞에서 수다 떨듯 술술∼

입력 2011-06-30 18:55

유영주씨, 여성가족부 상담 프로그램 참여

탈북주민 1178명(지난 2월 기준)이 모여 사는 인천 남동구는 전국에서 북한이탈주민이 가장 많은 동네다. 그중 절반에 가까운 550여명이 논현동 영구임대아파트에 산다. 그곳 탈북자 밀집지구에서 인천새터민지원센터를 꾸려가는 임순연 수녀는 요즘 탈북 여성 유영주(34)씨와 작은 일을 벌이고 있다. 지난 4월 시작한 6개월 단기 치유상담 프로그램이다. 여성가족부 공동협력 사업의 하나인 이 프로그램은 동네 탈북 여성 30명을 대상으로 1시간씩 5차례 개별상담 등을 진행한다.

내밀한 개인사를 그것도 집안에서 얼굴 맞댄 채 털어놓으려면 상담자에 대한 신뢰가 절대적이다. 여기서 유씨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2007년 임신 8개월의 몸으로 남한에 온 그는 한국에 오기 전 중국에서 오래 숨어 살았고 북송돼 감옥에도 갔었다. 탈북 여성들은 “다 겪어봐 안다”고 말하는 유씨 앞에서는 동네언니와 수다 떨듯 편안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임 수녀는 “북에서 온 영주씨가 상담을 한다는 건 새로운 시도인데 지금까지는 굉장히 성공적”이라고 했다. “솔직히 (새터민 여성이) 감정이 복받쳐서 말하기 시작하면 반이나 알아듣나 의심스러울 때가 있었어요. 북에서 온 영주씨에게는 말하기 힘든 것까지 잘 털어놓는 것 같아요. 더 잘 이해하고. 아주 긍정적이에요.”

최근 몇 년간 인천 탈북 여성들에게는 이런저런 슬픈 소식이 들렸다. 남편 손에 목숨을 잃거나 가정폭력과 우울증 등으로 인해 자살을 시도하는 여성 얘기도 있었다. 극단적인 사례지만 그들이 낯선 곳에서 겪는 고민의 무게는 짐작할 수 있다. 유씨는 가족관계나 나이, 탈북과정에 따라서 고민이 다 다르다는 걸 사회가 알아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상담에서는 독신여성, 자녀를 둔 한부모, 미혼모, 국제결혼 커플 등으로 나눠서 참가자를 받았다.

상담 과정에서 유씨는 탈북여성이 제일 아쉬워하는 걸 발견했다. 친정이나 고향 및 학교 친구 같은 ‘관계’였다. 남한에서 태어나고 자란 여성 다수는 존재조차 느끼지 못하는 사회적 자산이다. 유씨는 “남한 사람들은 탈북주민을 만나면 가르치려고만 한다. 그래서 털어놓고 친구가 되기 힘들 때가 있다. 지금 탈북여성에게는 친구가 되고 대화를 나눌 사회적 관계망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사람이 몇 번 만난다고 금방 바뀌겠느냐”고 했다. 중요한 건 누군가에게 속을 털어놓을 용기를 갖는 것이라고 했다. “결국 선택은 본인이 하는 거죠. 우리는 그저 용기를 내도록 도와주는 겁니다. 사업기간이 짧아 지속적으로 만나지 못하는 게 아쉽습니다.”

인천=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