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론’ 손호철 교수, 수사권 다툼 관전평

입력 2011-06-30 18:16


“검찰의 탐욕은 경찰의 탐욕으로 경찰의 탐욕은 검찰의 탐욕으로 견제하는 게 민주주의”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다툼이 볼썽사납다. 경찰이 ‘수사 개시권’을 갖고 검찰은 ‘모든 수사 지휘권’을 갖는 어정쩡한 합의로 봉합되는 듯하더니 내사도 지휘를 받느냐, 지휘 사항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느냐, 하면서 다시 충돌했다. 검찰이 웃으면 경찰이 반발하고, 경찰이 웃으면 검찰이 언성을 높인다. 지금은 대검 검사장급 간부들이 집단으로 사의를 표명한 상태다.

두 권력기관의 싸움은 해묵은 레퍼토리다. 지금처럼 수사권 갈등이 이슈였던 2005년, 서강대 손호철(59·정치학) 교수는 한 칼럼에서 “검찰의 탐욕은 경찰의 탐욕으로, 경찰의 탐욕은 검찰의 탐욕으로 견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여러 글과 저서에서 그의 ‘탐욕론’은 계속됐다.

“세상에 선한 권력은 없다. 어떤 권력도 탐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권력의 탐욕은 또 다른 탐욕으로 견제하는 수밖에 없다.”

30일 서강대 사회과학부학장인 손 교수에게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다툼 ‘관전평’을 들었다. 그는 미국 정치사상의 고전인 ‘연방주의 교서(Federalist Papers)’를 잊을 만하면 다시 꺼내 읽곤 한다고 말했다. 이 책에서 ‘탐욕은 탐욕으로 견제하라’는 대목만큼은 언제 읽어도 무릎을 치게 하는 탁견이라는 것이다.

-‘연방주의 교서’를 자주 읽는다고 했는데.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잊을 만하면 찾는다. 미국 정치제도를 이해할 수 있는 대표적인 책이다. 무지한 대중이 세상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엘리트 집단인 사법부가 위헌심사권을 가져야 한다느니, 하원 위에 상원을 둬야 한다느니 하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어떠한 권력도 탐욕에서 자유롭지 않으니 권력을 나눠서 견제해야 한다는 주장만큼은 훌륭하다.”

‘연방주의 교서’는 미국 독립전쟁 직후 알렉산더 해밀턴, 제임스 매디슨, 존 제이 등 세 연방주의자가 강력한 중앙정부의 필요성을 호소하려 신문에 기고한 글들을 엮은 책이다. 이들의 글에는 서로 다른 이익의 충돌을 조정하는 권력분립 주장이 담겼고, 이는 미국 정치제도의 근간이 됐다.

-그동안 여러 글에서 ‘권력의 탐욕’이란 표현을 썼다.

“세상에 선한 권력이 있어서 그 권력을 통해 뭔가 해보겠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 부패하지 않을 수 있는 권력이 있는가. 권력의 본질은 탐욕이다. 인간의 욕심이란 끝이 없기 때문에 결국 누군가 견제해야 한다는 게 민주주의다. 그래서 행정, 입법, 사법의 삼권분립이라는 근대 민주주의 정치제도가 나왔고, 견제와 균형을 추구하는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권력의 탐욕을 다른 탐욕으로 견제하려 했다고 본다. 경찰, 검찰, 정보부, 보안사가 상호 견제하게 만들지 않았나. 지금은 오히려 모든 권력이 검찰에 집중되고 있다.”

-권력의 탐욕이 잘 견제되는 사례가 있다면.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보라. 한국에서, 아프리카에서 유엔사무총장이 어떻게 나왔겠는가. 미국, 중국, 유럽, 러시아 열강들의 힘을 서로 견제하는 과정에서 어느 힘에도 치우치지 않을 사무총장이 나온 것이다.”

-그럼 그렇지 못한 사례는.

“금융위원회가 그렇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 금융정책과 감독기능을 한꺼번에 수행하는 종합 컨트롤타워가 됐는데,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 부산저축은행 사태 아닌가. 금융위원회의 비극적 종말이 대표 사례 아니겠는가.”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다툼이 치열하다.

“검찰에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는 데 수사권 조정의 목적이 있었다고 보는데, 결국 미봉책, 용두사미로 끝나는 것 같다. 수사지휘권은 확대되고 기소권 독점은 그대로니 검찰로선 사실 잃은 게 없다.”

-대검 검사장급 간부 전원이 사의를 표명했다.

“국회에서 수사지휘의 세부사항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바꾸면서 (검찰의) 권한이 축소됐기 때문에 반발한다고 보는 게 일반적인데, 정치학자로서 보기엔 정부에서 합의된 내용을 국회가 바꿨다는 걸 문제 삼는 것으로 생각된다. 국회는 입법 권한을 갖고 있다. 정부안을 독재시대처럼 통과시켜야 하겠는가. (검찰이) 과하게 대응하는 것 같다. 얼마나 많은 국민이 검찰 반발에 수긍할 수 있겠는가.”

-검찰의 권한을 경찰에 나눠줘야 한다고 생각하나.

“경찰이 선하다거나 인권을 더 보호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어떤 권력이든 견제하지 않으면 부패하기 때문에 권한을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권력 비대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경찰의 탐욕으로 검찰의 탐욕을 견제해야 한다고 본다. 검찰 권력과 경찰 권력 중 어느 권력이 남용될 소지가 많겠느냐 하는 논란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설사 경찰이 검찰보다 더 부패할 수 있는 조직이라 해도 나누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현재 권력 집중이 그렇게 심각한가.

“과거엔 특정 정치인이나 독재자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됐다. 이제는 조직에 쏠린다. 예전엔 정보기관 등이 준사법 기능도 했지만 민주화가 이뤄지면서 공작정치는 하기 힘들어졌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게 됐다. 법치주의란 이름 아래 모든 것이 이뤄지기 때문에 자연스레 검찰에 권력이 집중돼 왔다. 이건 역설적으로 더 큰 부작용을 가져올 수도 있다.”

-정치로부터 검찰의 독립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높다.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과 검찰 권력의 비대화는 다른 문제다. 정치권력에서 독립했다고 치자. 검찰 자체 논리로 스스로 권력화하고 있다면 그것도 문제다. 국민의 통제를 받지 않는, 다른 견제를 받지 않는 권력은 문제다. 노무현 정부 시절 검찰은 정치권력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웠으나 수사권과 기소권 독점에 대한 것들은 개혁되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가 이를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정치의 사법화를 지적하는 학자들도 있는데.

“행정부의 대통령, 입법부의 국회의원 모두 선출직이다. 선출직이 아닌 곳은 사법부뿐이다. 국민의 직접 통제를 받지 않고, 체제가 위험할 땐 위헌심사권도 갖는다. 사법부가 기득권의 보루가 될 여지는 상당하다. 그래서 나타나는 게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다. 국가의 중요한 일들이 정치 과정이 아닌 사법 과정으로 결정되는 거다. 법치주의란 이름 아래 민의가 왜곡될 우려가 있고, 정치권력과 결합해 사법부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도구처럼 될 수 있다. 미국에서 나온 개념인데 우리나라에선 BBK 사건 이후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등이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문제다.”

-이런 문제들을 해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기관 대 기관의 상호 견제는 물론이고 검찰도 주민들이 뽑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법원도 마찬가지다. 국민이 항상 옳지 않다 하더라도 그게 맞다고 본다. 결국 국민 통제에 놓일 때 권력은 통제되는 것 아니겠는가. 미국은 검찰 직선제의 나라다. 연방검찰청장은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지방검찰청장과 고등검찰청장은 선거로 뽑는다.”

그는 ‘탐욕’을 키워드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198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대중 김영삼 양김(金)이 갈라선 것을 정치인의 탐욕이 민주주의 발전을 그르친 사건으로 꼽았다. 양김의 분열로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가 지역 간 대결 구도로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2007년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이 대통령 선거에 나선 것은 ‘노욕(老慾)’이라고 말했다. 젊은 세대에 넘겨주고 아름답게 물러서야 했는데 욕심을 부리는 바람에 당의 분열까지 초래했다는 것이다. 독재자들의 탐욕은 말할 것도 없고. 하지만 탐욕은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 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예로 들었다. 민주화 운동 주체의 순수한 의지뿐 아니라 탐욕 또한 민주화를 이끄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겠느냐는, 말하자면 ‘탐욕의 순기능’ 측면에서다.

MBC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에서 김건모가 처음 탈락한 뒤 재도전에 나섰을 때는 ‘이인제, 손학규, 김건모’란 제목의 글을 쓰려 했다고 한다. 그는 “(세 사람이) 대한민국 불복종의 계보처럼 됐거든. 선거(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경기도 분당을에 출마한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국면이라 결국 안 썼는데, 하여간에 진보든 보수든 이념을 떠나서 욕심 부리다 룰까지 깨면 안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선 기자 boky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