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나눔의 텃밭

입력 2011-06-30 17:37

즐기는 TV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가 국회방송의 ‘세계로의 여행’이다. 헬리콥터에서 찍은 각국의 도시 풍경을 보여주는데, 지극히 단순한 화면과 차분한 내레이션이 좋다. 프로의 특성상 건물의 옥상이나 주택의 지붕이 부각되니, 이탈리아나 그리스 등 유럽의 도시가 단연 돋보인다.

하늘에서 보는 우리 옥상은 어떨까. 도시와 시골, 관공서와 민가 할 것 없이 지저분하다. 물통이나 빨래야 어쩔 수 없다 쳐도 허접한 물건은 죄다 옥상에 쌓아둔다. 가건물을 지어 창고로 쓰기도 한다. 자기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늘에서도 안 보일까?

서울 신수동 주민센터는 달랐다. 건물 입구부터 화초 대신 깨를 심더니 50여평에 이르는 옥상에는 ‘나눔의 텃밭’이 조성돼 있었다. 상추, 호박, 가지, 토마토, 돌미나리, 고추, 부추 등이 큰 플라스틱 용기에서 자라고 있었고, 그 그릇들은 위에서 보니 ‘나눔’이라는 글자를 만들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텃밭을 주민들이 직접 경작한다는 것이다. 80여명으로 구성된 회원들이 당번을 정해 생장을 돌본다. 일부 회원은 집에서 가꾸었다가 한 달에 한 번 장날에 내다팔아 독거노인을 돕는다. 텃밭 아이디어를 낸 신수동 조주연 동장은 “규모는 작지만 도시농업의 가능성을 찾고 싶었다”고 말했다.

공공건물의 텃밭은 2002년부터 시작된 옥상정원의 연장선에 있다. 옥상정원은 대기의 질을 개선하고 도시 열섬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도입했다. 그러나 관리가 만만치 않은데다 외부인들의 출입을 통제하는 과정에서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옥상텃밭은 옥상정원의 대안으로 충분하다. 신수동을 견학한 공무원들은 옥상텃밭을 통해 이웃과의 접촉을 넓힐 수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성산2동 등 일부에서는 이미 신수동을 벤치마킹해 옥상텃밭을 주민들의 유대를 강화하는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서울시가 최근 아파트 등 집단주택에 공동체 정신을 불어넣기 위해 공동텃밭을 조경시설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현행 국토해양부 고시기준에는 벤치·정원석·생태연못·동물이동통로 등을 조경시설로 정하고 있다. 여기에 텃밭을 추가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아파트에 텃밭을 만들어 이웃과 정을 쌓는 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 빈 땅만 있으면 자꾸 무엇을 심고 싶어 하는 노인들에게는 작업장을, 어린이들에게는 체험학습장을 제공할 수도 있다. 옥상과 지상에 푸른 식물이 넘실대는 모습, 이제 헬기 촬영도 거리낄 게 없겠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