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문지방 넘기] 주기도문은 주문 아닌 기도… 예수의 ‘뜨거운 심장’이 담겨
입력 2011-06-30 17:33
주기도문은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입니다. ‘주기도문’ 네 글자에서 가운데 두 글자 ‘기도’를 빼면 무슨 말이 됩니까? ‘주문’이 되지요. 주기도문을 주문처럼 생각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어떤 분들은 주기도문을 마치 주문을 외듯이 숨도 쉬지 않고 단숨에 달달달 외워 버립니다. 주기도문은 천천히 그 뜻을 음미하면서 암송해야 합니다.
교인들이 주기도문을 외우는 것을 자세히 들어보면 틀리게 하는 부분이 두 군데 있습니다. 첫째는 ‘나라이 임하옵시며’를 ‘나라에 임하옵시며’로 잘못 말합니다. 둘째는 ‘이루어지이다’를 ‘이루어지리라’로 말합니다. 그렇게 하면 전혀 엉뚱한 뜻이 됩니다. 주기도문을 주문처럼 외우다 보니까 이런 결과가 빚어진 것입니다.
언젠가 후배 목사님과 전화통화를 하다가 주기도문에 대해서 새로운 사실을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를 드립니다. 우리는 이 기도를 ‘최고의 기도’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뜻을 접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기도야말로 최고의 기도가 분명합니다. 후배는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마 26:42)라는 기도가 주기도문에 나오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대목과 문자적으로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습니다. 헬라어 ‘게네데토 토 델레마 수’를 직역하면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정도가 됩니다. 우리말 번역을 다르게 했기 때문에 똑같은 말인 것을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렇듯 주님의 기도에는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최고의 기도’가 보석처럼 박혀 있습니다.
또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신음하면서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눅 23:34) 하고 기도했습니다. 이는 ‘최후의 기도’입니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자신을 죽이려고 달려드는 짐승 같은 무리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주의 기도에도 용서를 비는 내용이 나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라는 대목입니다. 주기도문의 모든 내용은 전부 다 하나님께서 해 주시기를 간구하는 내용이지만 유일하게 용서하는 일은 우리 자신들이 해야 될 일입니다. 용서의 기도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드린 ‘최후의 기도’와 일맥상통합니다.
이렇게 주의 기도에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드린 ‘최고의 기도’와 십자가 위에서 드린 ‘최후의 기도’가 우뚝 세워져 있습니다. 마치 예루살렘 성전의 입구에 ‘야긴’과 ‘보아스’ 두 기둥이 세워져 있는 것과 같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골고다 언덕까지의 거리는 예수님의 일생에서 가장 멀고 험한 길이었습니다. 이 먼 길이 주기도문에 그대로 새겨져 있습니다. 그 길을 마다하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가신 예수님의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간간이 예수님의 핏방울도 진하게 배어 있습니다.
주기도는 ‘주문’이 아니라 예수님의 ‘뜨거운 심장’이 담긴 최상의 기도입니다. 따라서 주기도는 입술이 아니라 심장으로 드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오종윤 목사 (군산 대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