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명령한 살인 죄책감은 병사들 몫이었다

입력 2011-06-30 18:05


살인의 심리학/데이브 그로스먼/플래닛

저 사람은 살과 피로 이뤄진 인간이다. 수통을 기울여 물을 마시고 흐르는 땀을 닦고 소변을 본다. 그가 당신의 총구 앞에서 몸을 떤다. 드디어 결정의 순간이다. 방아쇠를 당길 것인가. 총구가 불을 뿜는다. 살과 피가 튀고 몸뚱이는 들짐승마냥 꿈틀댄다. 그제야 당신은 깨닫게 된다. 선의가 반짝이던 과거의 세계는 무너졌다. 삶은 영원히 달라질 것이다. 그의 전쟁은 막 끝났지만, 당신의 전쟁은 이제 시작됐을 뿐이다.

살인이 늘 범죄자의 이상행동인 건 아니다. 세상에는 국가와 사회가 공인한 공식적 살인이 존재한다. 전쟁터에서의 군인의 살인이다. 시민들은 열심히 헌신적으로 죽이고 죽은 이들을 위해 퍼레이드를 하고 묵념을 한다. 그러나 깔끔하고 도덕적인 살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살인은 타인의 인격을 말살하는 행위. 전장이라고 살인의 본질이 바뀌지는 않는다.

총을 쏘지 못하는 80%의 군인

웨스트포인트 미 육군사관학교 심리학과 교수 등을 지낸 예비역 중령 데이브 그로스먼은 ‘살인 심리학’에서 군대의 살인이라는 누구나 생각하지만 아무도 논하지 않았던 주제를 파고들었다. 전투살인은 국가가 부추기고 책임은 개인에게 미뤄놓은 일종의 대리살인에 다름 아니다.

16년간 현역으로 복무한 저자는 군대의 작동 원리와 전쟁의 불가피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죽임으로써 평화를 성취하는 군인의 역설적 존재기반도 이해했다. 책은 선악을 재단하지 않는 유연한 태도로 전쟁과 살인이라는 인류의 오랜 미스터리에 도전했다. 1995년 출간된 뒤 살해학(killology)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군사학 분야 고전이다.

미국 육군 중장 S L A 마셜은 제2차 세계대전 중 군인들에게 전투 행동에 관해 질문했다. 의외의 사실이 발견됐다. 병사 100명 가운데 교전 중 “무기를 사용했다”는 이는 15∼20%에 불과했다. 1876년 미 병사들은 2만5000발을 쏜 끝에 인디언 99명을, 1870년 프랑스군은 4만8000발을 쏘아 독일군 404명을 맞췄다. 성공률은 252발당 1건, 119발당 1건에 불과했다. “15발자국 정도 거리에서 일제사격을 주고받고도 단 한명의 사상자도 생기지 않았다”는 19세기 전투 목격담도 전해진다.

싸우고도 다치지 않은 건 그들이 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엉뚱한 곳에 쏘았거나. 추적이 가능한 대다수 전투에서 80∼85%의 병사들은 총을 쏘지 않았다. 넋이 나갔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살해를 거부했다. 허공에 쏘거나 오조준하거나 다친 병사를 도왔다. 이유는 뜻밖에 평범했다.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아니라 죽여야 한다는 공포가 그들을 얼어붙게 했다. 평균적인 병사는 본능적으로 살인을 거부했다. 저자는 “인간 내면에 같은 종을 해치지 않으려는 강력한 힘이 자리 잡고 있다”고 말한다. 총을 쏘아야 하는 순간이 오면 압도적 다수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가 됐다.

만약 총을 쏘기로 결정했다면 그건 동료 병사에 대한 의무감, 상관에 대한 충성심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그게 무엇이든 도덕적 후폭풍은 병사 개인이 감당해야 한다. 살해 후 죄책감은 그들의 나머지 생을 집어삼키고도 남을 만큼 거대했다.

살인 방정식 구하기

죄책감은 살인의 양과는 무관했다. 1943년 7만명의 시민을 몰살시킨 독일 함부르크 폭격기 조종사는 정신적 트라우마를 거의 겪지 않았다. 물리적 거리 덕분이다. 그들은 “전투의 땀과 감정이 뒤엉킨 눈동자를” 마주하지 않았다. 해군 함포 사수, 미사일 발사반원, 포병 등도 마찬가지다. 보지 않으면 표적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쉬워진다. 그들의 살인에서는 피 냄새가 제거된다. 피해자의 얼굴을 보는가. 그게 관건이었다.

근접전투로 갈수록 살해의 공포지수는 급상승한다. 미사일보다는 야포가, 포보다는 총이 사용될 때 살인에 대한 거부감은 커졌다. 반면 피해자가 다른 인종일 경우 심리적 부담은 가벼워진다. 또 악을 처단한다는 도덕적 정당성이 강력할수록, 명령을 내리는 상급자를 존경할수록 살인은 쉬워진다. 미군이 일본군을 ‘잽’, 동남아인을 ‘구크’라는 경멸적 별명으로 부른 건 무의식적 거리두기였다. 물론 군대 내에는 2%의 사이코패스(정신병질자)가 존재한다.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이들은 주저 없이 살인하지만 명령을 따른다는 점에서 범죄자와는 구분된다.

전쟁을 한다는 것

현대전에서 살인율을 높인 건 훈련이었다. 종소리에 반응해 침을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전시를 모방한 총격 훈련은 반사적 살인을 가능하게 했다. 가만히 서 있는 네모난 표적 대신 양배추 속에 토마토케첩을 넣은 실물 크기 인형(조건)을 사격한 뒤 인형이 쓰러지도록(보상) 만들면 전장에서 목표물이 나타났을 때 살인은 한결 용이해진다. 미군은 이런 방식으로 15∼20%에 불과하던 사격률을 한국전쟁에서는 50%, 베트남전에서는 95%까지 끌어올렸다.

놀랍게도 사격률이 높아지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급증했다. 교육과 의무에 따라 살인을 한 그들은 평생 후유증으로 괴로워했다. 저자는 말한다. “정말 전쟁을 벌이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시도에는 장기적인 대가가 뒤따른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총을 쏘는 건 군인이다. 전투는 종전과 함께 중단된다. 하지만 살해는 사회 전체에 대가를 요구한다. 전쟁은 그래서 종전 후에도 쉽게 끝나지 못한다.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인 듯하다. 이동훈 옮김.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