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라의 수다] 사무실의 독재자

입력 2011-06-30 18:08


서울에 여름이 오고 있다. 기온이 상승하면서 휴가 생각도 간절해지는 때다. 한낮의 명동은 색색으로 나풀거리는 가벼운 옷차림에 챙이 넓은 모자를 쓴 관광객들로 넘실댄다. 마치 동양 전체가 서울로 휴가를 온 것만 같다. 화사한 관광객에 비하면 짧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빌딩을 빠져나온 직장인들은 창백하고 칙칙한 모습이다. 땀에 젖은 와이셔츠와 넥타이 차림에 햇빛도 못 보고 잠도 제대로 못 잔 얼굴이다.

한국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업무시간이 길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업무효율성이나 행복지수는 거의 꼴찌를 달린다. 피로에 지치고 술이 덜 깬 직장인들이 효율적으로 일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 직장인 대부분은 법적으로 1년에 약 15일의 휴가를 쓸 수 있다. 초과 근무한 것까지 합치면 15일이 훨씬 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법적 휴무일을 다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심지어 4∼5년간 한 회사에 근무하며 한 번도 휴가를 사용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

휴가가 절실해 보이는데도 왜 한국인은 휴가를 사용하지 않는 것일까? 이런 질문에는 항상 뻔한 대답이 돌아온다. “일이 너무 많아서요.” 일 없는 사무실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산꼭대기로 바위를 굴려 올리는 시시포스처럼 밤낮 일해도 일이 끝나지 않는 건 오늘날 직장인들의 운명이다.

문제는 다른 나라 근로자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휴가를 즐기는데 왜 한국에서는 휴가 한 번 내려면 그렇게 눈치를 많이 봐야 하는가이다. 어떤 사람들은 독재적인 상사 때문이라고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팀원들 눈치가 보여서라고 한다. 누구 한 사람이 휴가를 많이 쓰면 팀 내에 균형이 깨진다는 것이다. 둘 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상사가 부하직원들에게 휴가를 주지 않으려 하는 것은 당연하다. 눈썹만 까딱해도 직원들이 찍소리 못하고 1년 내내 얌전히 일하는데 세상에 어느 상사가 직원들을 놀다 오라고 내보내겠는가? 더 이상한 것은 누군가 휴가를 더 쓴다 싶으면 다른 직원들이 모여서 그 사람 험담을 한다는 것이다. 직원들이 그렇게 서로를 돕지 않으면 휴가나 다른 복지혜택 받기는 모두에게 힘들어진다. 안 그래도 휴가를 주지 않으려는 사장이 직원들 사이에 그런 적개심이 있다는 것을 알고 마음을 바꾸겠는가?

해결책은 하나다. 휴가를 더 사용하는 직원을 욕할 것이 아니라 서로 힘을 합쳐서 모두가 법정휴무 15일을 돌아가면서 쓸 수 있게 해야 한다. 직장인들이 모두 15일씩 쉰다고 해서 한국경제가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일과 여가의 균형이 맞으면 업무효율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그래도 상사가 무섭고 사장이 두려운 사람은 이탈리아 저널리스트 티치아노 테르차니에게 도움을 받자. 대통령, 군 통수권자, 독재자들을 인터뷰할 일이 많았던 테르차니는 저서 ‘네 마음껏 살아라’에서 아들에게 훌륭한 조언을 하고 있다. “무서운 사람이 있으면 변기에 앉은 모습을 상상해 봐라. 상대가 누구든 주눅들 것 없어! 누가 폼을 잡으며 장군처럼 으스대거든 그자가 아침마다 똥 누는 장면을 생각해 봐라. 남들과 다를 바 없지.”

베라 호흘라이터(tbs eFM 뉴스캐스터)

번역 김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