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지, 예술로 재생하다… 수원 ‘인계시장’ 안마시술소로 간 예술가들
입력 2011-06-30 18:09
원래 맥주가 흘러 증발한 듯한 냄새를 풍기던 곳이다. 대리석 바닥에 마감재는 번쩍이고, 방마다 욕조와 침대가 있어서 많은 아저씨들이 ‘언니’에게 몸뚱어리 맡기던 퇴폐 안마시술소. 한 블록 건너 하나씩 ‘안마’ 간판이 있는 경기도 수원시 인계동 유흥가에서 5년 넘게 성업해온 이 업소를 올 봄부터 예술가들이 점거했다. 이들은 ‘생활문화예술재생레지던시’라는 복잡한 이름의 공공예술을 하면서 욕조와 침대가 있던 방들을 갤러리와 작업실로, 미술작품 파는 시장으로 바꿔놓았다. 이곳의 간판은 이제 ‘인계시장’이다.
지난달 26일 찾아간 인계시장은 6층 건물의 4층과 5층에 있었다. 1층은 커피숍, 2층은 술집, 3층은 노래방, 6층은 당구장. 4층과 5층엔 안마시술소가 있는 게 훨씬 자연스러울 층별 배치다. 건축물대장을 보니 2005년까지는 모텔이었다. 낮 동안 1만∼2만원에 방을 빌려주는 ‘대실’ 전문 러브호텔이었다고 한다.
무슨 이유에선지 이 건물이 경매에 나왔고, 김월식(42) 감독을 비롯한 예술가 10여명이 새 건물주로부터 안마시술소였던 공간을 빌렸다. 방 11개가 있는 4층은 갤러리와 시장이 됐고, 5층에선 방 10개를 예술가들이 하나씩 차지한 채 먹고 자고 ‘안마시술용’ 욕실에서 씻어가며 작품을 만든다.
이들은 수원시 전역에서 주워온 재활용 소재로 무언가 만들고 전시하고 또 팔고 있다. 총책임자인 인계시장 프로젝트 디렉터 김월식씨 자리는 4층 중앙홀에 있었다. 그는 작가들의 공방이 방사형으로 펼쳐진 한가운데에 앉아 마치 ‘포주’라도 되는 양 큰 소리로 얘기했다.
“여기 입주할 때 5층은 개조할 필요가 없었어요. 방 하나에 욕실 하나씩 다 붙어 있어서. 작가들이 레지던시(거주) 하기엔 이보다 더 좋은 장소가 없죠. 하하.”
그가 말한 ‘레지던시’란 작가들이 특정 공간에 들어가 살면서 그곳에서 소재를 찾고 그곳에 어울리는 작품 활동을 하는 걸 뜻한다. 순수 미술, 조각, 설치예술 같은 분야에서 많이 하고, 국립현대미술관의 고양·창동 스튜디오는 시설과 지원이 세계적 수준이다. 이들은 그런 ‘레지던시’를 안마시술소에서 하고 있는 것이다. 4층 갤러리 한켠에 안마시술소 시절의 침대가 유품처럼 남아 있다. 작가들은 허리춤 높이였던 침대 다리를 조금씩 잘라내서 소파로 쓰고 있었다. 이 도발적인 공간에 대해 김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난 근대(모더니즘)를 좋아한다. 생애 첫 스튜디오는 재개발 현장이었다. 지난해에는 고물상 옆에 있어 봤는데 영감의 원천이다. 여기도 마찬가지다. 근대라는 게 한국에선 남성 중심 문화다. 바깥에서 열심히 일하는데 집에선 기를 못 펴는 남자들. 유일하게 박수 쳐주는 데가 단란주점, 안마시술소. 언니들이 ‘오빠∼, 오빠∼’ 해주는 이런 데가 흥미로웠다. 처음 이곳을 보고 내가 드디어 연극 무대 하나 만들 수 있겠구나 했다. 작가들이 만드는 걸 다 보여주고 서비스하는 무대.”
안마시술소였을 때 아저씨들 맞이하던 4층 카운터엔 조명작가 곽동열(35)씨가 앉아 있었다. 그를 통해야 중앙홀로 들어갈 수 있다. 예전엔 경찰 단속에 대비해 육중한 철문이 있었는데 철거했다고 한다. 수줍은 말투에 어깨까지 머리카락이 물결치는 이 미남 작가는 철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여기서 만든 대표작품을 보여 달라 했더니 여자화장실로 데려가 천장 조명을 가리켰다. 노랑 초록 파랑 조명 9개가 아늑한 빛을 내고 있었다.
“카페 철거하는 곳에서 구해온 거고요. 제가 부드러운 빛을 좋아해요. 독일에서 공부할 때 느낀 건데, 거긴 노랑 조명이 많아요. 눈을 편하게, 주변을 차분하게 다시 비춰주죠. 한국 집은 흰 빛이 많은데, 눈이 부시고 좀 그래요. 이전 업소의 기억은 이제 잊고, 여기 찾아오는 여자 분들이 편하게 느끼시도록 만들었어요.”
곽씨는 4년간 독일에서 공부했지만 돈 때문에 학위를 따오지 못했다. 원래 독일 대학은 등록금을 거의 안 내고 다녔는데, 신자유주의 바람에 학비가 좀 비싸졌다고 한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예술만 하고 먹고살 수가 없었다. 낮에는 목수 밤에는 대리기사를 했다. 지금은 조명 작업 외에도 여기서 같이 사는 다른 작가들을 위해 요리를 좀 한다. 독일에 깻잎 씨앗을 몰래 가져가 키워서 감자탕 끓여먹던 솜씨를 발휘하고 있다.
5층에서 사는 천원진(37) 작가는 목공예를 한다. 인계시장에 참여해서는 화가들이 들고 다닐 법한 화구 가방을 나무로 만들었다. 폐가구에서 나온 작은 서랍 두 개를 맞붙여 완성했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유품인 가구들을 모아서 새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플로리스트 한송이(28·그의 본명이다)씨는 고무장갑에 꽃을 심는다. 발레리나의 발처럼 플로리스트의 손은 눈뜨고 볼 수가 없다. 꽃에 농약을 많이 써서 손이 상한다. 그는 손을 보호하려고 작업할 땐 고무장갑을 끼는데, 이제 그 장갑을 화분 삼아 꽃을 키운다.
“쭈글쭈글 벗어놓은 고무장갑에서 지난 세월 이 공간에서 소비된 그것(콘돔)을 떠올린다. 거기에서 꽃이 자라는 걸 이 동네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좋지 않겠나.” 그는 요즘 하루에 절반은 네일아트 작품을 만들며 보낸다. 곧 이곳을 찾게 될 주변 업소 ‘언니들’에게 서비스를 해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인계동에는 수원시청이 있다. 27일 오후 5시50분, 시청 위생정책과장은 퇴근하려는 듯 겉옷을 손에 들고 막 자리에서 일어서던 참이었다.
-인계동에 대해 궁금한 게 있어서요. ‘안마는 인계동’이라고들 하던데요.
“아, 안마는 우리 소관이 아니에요. 보건소에 물어보세요. 안마는 보건소 질병의약계 담당입니다.”
-안마 간판이 무척 많던데요. 빌딩 전체가 안마시술소인 곳도 여럿이고.
“공무원이 소관사항 외에는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굳이 더 물어볼 필요는 없을 듯했다. 시청 사무실의 대형 유리창 밖에선 인계동 ‘업소’들의 네온사인이 번쩍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곧 밤이 된다.
이 동네가 어떤 곳인지, 대답은 택시기사들이 해줬다.
“예전엔 인계동에 주차하면 안마시술소랑 룸살롱 전단지로 차가 온통 뒤덮였어. 그러다가 얼마 전부터 단속을 하니까 삐끼(호객꾼)들이 대타를 찾은 게 택시야. 수원역 앞에 길게 늘어선 택시기사들을 상대로 영업하는 거지.”
“기업형 안마시술소에서 손님 태워오는 기사들한테 팁으로 이삼만원씩 줘. 요상한 서비스도 많은가 봐.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도 있더라고.”
“주민들은 이곳을 인계동 ‘박스’라고 불러요. 남쪽은 수원시청, 동쪽은 CGV 영화관, 북쪽은 KBS 수원센터, 서쪽은 국도 1호선에 병풍처럼, 박스처럼 갇힌 유흥의 공간.”
28일에는 현대무용가 안은미(49)씨가 인계시장에 왔다. 빡빡 머리에 신라 고분에서 금방 나온 듯한 금귀고리, 닭털 모양의 붉은 드레스를 입고 어깨를 흔들며 “꺅∼ 나도 이런 레지던시 하고 싶어”라고 외쳤다. 그의 닦달로 한 뮤지션이 스카이라이프 위성 접시를 이용해 만든 기타 연주를 처음 선보였다. 목공예 하는 천 작가가 맞춤 제작해 준 재활용 악기.
길거리 밴드 ‘삭개오와 뽕나무’도 한 곡조 뽑았다. 키가 작아서 예수님 보려고 뽕나무에 올라갔던 누가복음 19장의 그 삭개오에서 밴드 이름을 따왔다. 멤버는 하와이안 민속악기 우클렐레의 장벽진(27), 아프리카 타악기 젬버의 이종민(26), 보컬 김정태(27), 기타 전이삭(29)씨. 직업은 순서대로 에어컨 기사, 헬스 트레이너, 인삼 농사꾼, 공구회사 직원이다. 수원중앙침례교회 소속인 이들은 이 공간을 안방처럼 차지한 채 아예 연습실로 쓰고 있다.
김월식 감독에게 물었다. 왜 인계동에, 왜 안마시술소에 와 있는지.
“예술이 별거냐, 사람들과 섞이면서 문화를 재생해보자, 하는 건데… 예전에 인덕원에서 내가 한번 실패한 적이 있다. 인덕원은 라스베이거스 같은 곳이었다. 룸살롱 단란주점이 번성하고 거기서 파생되는 2차 산업, 옷집 미장원 해장국집 여관 애견센터 같은 게 주민들을 먹여 살리는. 그분들 쉬는 날이 1년에 딱 두 번이다. 설날과 추석. 새벽 2∼3시는 돼야 장사 마치는 변두리 도시 자영업자에게 고상하고 거창한 예술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그들 틈에 섞여서 이류 쌈마이 마이너리티 문화를 제대로 조명해보자 했는데, 성매매특별법 이후 자영업자들이 줄줄이 도산하면서 내 프로젝트도 쫄딱 망했다. 그래서 인계동에 왔고, 이번엔 아예 안마시술소로 들어온 거다.”
인계시장은 매주 월요일 문을 닫는다. 갤러리와 작업실을 공개하며 주민들과 어울리려는 작가들에게도 휴식이 필요해서다. 동물원의 동물 노릇, 생각보다 힘들다.
수원=글 우성규 기자, 사진 곽경근 선임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