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인하 효과 거의 없는 ‘오픈 프라이스’

입력 2011-06-29 21:24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동 한 아파트 상가의 슈퍼마켓을 찾은 주부 송미진(36)씨는 ‘50% 세일’이라고 적힌 1000원짜리 월드콘 4개를 집어 들었다. ‘오픈 프라이스’에 대해 잘 모른다는 송씨는 “그동안 마트나 슈퍼에서 붙인 판매가격에 익숙해지다 보니 정작 제품 포장지에 가격이 적혀 있지 않다는 사실은 몰랐다”며 “오픈 프라이스 제도를 시행하면 일단 더 싸게 살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인근 상가 지하 대형마트에서 1800원짜리 월드콘을 사던 홍모(48·회사원)씨는 “기준이 되는 가격을 모르니 과연 내가 적정한 가격을 주고 사는 건지 의문”이라며 “이 제도를 통해 은근슬쩍 가격을 올리는 경우가 더 늘었을 것 같다”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제품 포장지에 권장소비자가격을 표시하지 않는 ‘오픈 프라이스’ 제도가 도입된 지 다음 달 1일로 1년이 되지만, 유통업체별로 가격이 들쑥날쑥하다 보니 가격 상승을 체감하지 못하는 소비자들이 많다. 현재 오픈 프라이스 제도가 시행되는 품목은 라면과 과자·아이스크림·의류·가전제품 등 총 279가지이다. 실제 판매가보다 부풀려 소비자가격을 표시한 뒤 할인해 주는 기존의 폐단을 근절시키고, 가격 책정을 유통업체에 자율적으로 맡겨 가격 인하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시행됐다. 하지만 지난 1년간 가격 인하 효과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29일 한국은행과 통계청에 따르면 오픈 프라이스 제도가 확대 시행된 지난해 7월부터 지난 5월까지 과자 및 당류식품 물가상승률을 비교한 결과, 총 8개 제품 가운데 5개가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웃돌았다.

비스킷 제품은 이 기간 13.74% 올랐고, 스낵과자는 7.97%, 사탕은 12.85%, 아이스크림은 10.80%, 빙과류는 18.03%의 상승률을 보였다.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88%였다.

하지만 출고가를 조절하는 제조업체, 판매가를 조절할 수 있는 유통업체들은 이러한 물가 상승에 대해 서로 책임을 미루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제조업체는 납품가를 올리겠다고 통보하면서 실제로 희망하는 판매가도 제시한다”며 “대형마트가 전적으로 바잉파워(buying power)를 가진다는 것은 오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제과업체 관계자는 “유통업체와의 관계와 판매량 감소 가능성 등을 고려해야 하므로 제품 출고가를 원하는 대로 올리지 못한다”며 “출고가보다 더 큰 폭으로 판매가를 올리는 유통업체의 ‘눈덩이 효과’가 문제”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제조업체는 원가 상승 등의 이유로 출고가를 올리고 유통업체는 출고가 인상을 이유로 판매가를 올리는 관행이 굳어진 지 오래다.

김수현 기자 siemp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