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의 사계] 비에 젖은 살구

입력 2011-06-29 17:48


창경궁은 마이너다. 경복궁처럼 법궁도 아니고 창덕궁처럼 보조궁궐도 아니다. 창덕궁이 커지다 보니 영역을 확장해 만든 생활공간이다. 영조와 사도세자, 장희빈과 연산군의 무대였다. 명정전 앞의 품계석처럼 모든 것이 작고 아담하다.

창경궁은 쓸쓸하다. 짓고 허물기를 반복해 상처가 많다. 일제가 수많은 전각을 헐어내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들였다. 지금도 곳곳에 전각의 주춧돌이 남아있다. 너럭바위에는 심초석의 흔적이 뚜렷하다. 1983년 정부는 일제가 지은 건물을 헐어내고 동물원을 과천으로 보낸 자리에 나무를 심었다. 창경궁의 숲은 거의 조경용이다. 담장 옆의 창덕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동안 창경궁은 드라마 ‘이산’을 본 일본인 관광객이 무리 지어 찾는다.

창경궁은 습하다. 물길도 많고 우물도 많다. 여름의 이끼가 겨울에도 죽지 않고 봄으로 이어질 정도다. 유월의 폭우에 살구 알이 후두둑 떨어졌다. 살구나무 옆 금천의 물이 많이 불었다.

손수호 논설위원 shsh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