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발효’ 한-EU 신 경제시대] 한국차, 1400만대 시장 ‘활짝’… 유럽차, 국내 독주 ‘날개’

입력 2011-06-29 21:32


(1) 기회 맞은 자동차 시장

인구 5억명의 유럽연합(EU)과 우리나라 간 자유무역협정(FTA)이 7월 1일 0시부터 잠정 발효된다. 유럽 27개국이 속한 EU는 2009년 국내총생산(GDP)이 16조4000억 달러로 세계 GDP의 30%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 단일 경제권이다. 한·EU FTA가 잠정 발효되면 EU에서 생산된 1만여개 품목의 관세가 즉시 철폐되거나 단계적으로 인하돼 산업, 무역, 투자, 서비스 등 각 분야에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본보는 한·EU FTA 잠정 발효에 따른 자동차, 생필품, 농산물, 명품, 지식산업 시장에 미칠 변화 등을 5회에 걸쳐 연재한다.

현대자동차 울산 2공장에서는 요즘 쏘나타의 유럽형 모델인 중형 왜건 i40(프로젝트명 VF) 생산이 한창이다. 7월 1일 한·EU FTA 잠정 발효에 맞춰 유럽 시장을 겨냥한 전략형 신차다. 초도 물량은 이미 선적을 마치고 유럽으로 향하고 있다.

i40는 지난 3월 스위스 제네바모터쇼에서 처음 공개돼 현지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현대차 유럽디자인센터가 디자인을 맡아 스포티하고 역동적인 스타일로 완성한 게 특징이다. 유럽 환경규제인 유로V를 만족하는 U-Ⅱ 1.7ℓ 디젤엔진 2종과 감마 1.6ℓ GDi 가솔린엔진, 누우 2.0ℓ GDi 가솔린엔진 장착모델 등으로 출시돼 소비자들의 선택폭을 넓혔다. 현대차 관계자는 “i40가 8월쯤이면 전 유럽 시장에 깔릴 것으로 예상된다”며 “국내 출시보다 빠른 것으로, 관세 인하 효과와 함께 유럽 공략의 첨병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형 신차 잇따라 출시=자동차는 한·EU FTA 잠정 발효에 따른 최대 수혜 업종으로 꼽힌다. 유럽 자동차 시장이 지난해 연간 1400만대 규모로 국내(146만대)보다 10배가량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음 달 FTA가 잠정 발효되면 국내에서 유럽으로 1500㏄ 초과 승용차를 수출할 경우 현재 10%인 관세가 당장 7%로 인하된다. 국산차의 가격경쟁력이 그만큼 높아지는 셈이다.

실제 지난해 우리나라가 유럽으로 수출한 차량은 29만8263대였던 반면 국내에 수입된 유럽차는 6만2971대에 불과했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 관계자는 “한·EU FTA가 잠정 발효되면 수출 경쟁력이 향상되고 일본과 미국 등 EU와 FTA를 체결하지 않은 경쟁국에 비해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현대차그룹은 2013년까지 현대차의 유럽 시장 판매대수를 50만대로 늘리고 기아차도 45만대로 끌어올리기로 했다. 현대·기아차를 합쳐 현재 5%인 시장점유율도 2015년에는 현대차 단독으로만 5%까지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현대차는 i40에 이어 벨로스터를 출시하고 내년 초 대표 해치백 모델인 i30 후속 모델도 선보일 예정이다. 기아차는 하반기 신형 프라이드(프로젝트명 UB)와 K5를 출시키로 했다.

르노삼성자동차도 신형 QM5 등의 유럽 수출을 적극 늘린다는 방침이다. 쌍용자동차는 신차 코란도C 등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시장에 기대를 걸고 있다. 국내 완성차업계는 또 관세 인하로 얻어지는 이익을 마케팅 비용으로 돌리는 등 현지 판매 확대에도 주력할 계획이다.

◇국내는 유럽차 독주 가속=2009년 4.8%였던 수입차 국내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6.5%로 높아졌고 올해는 8.0%를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현재 수입차 시장은 BMW, 메르세데스-벤츠, 폭스바겐 등 독일 브랜드를 중심으로 한 유럽차가 주도하고 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 집계 결과 올 1∼5월 국내 수입차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4% 증가한 4만2700대였다. 이 중 유럽차 비중은 75.4%로 일본차(17.2%), 미국차(7.4%)를 크게 앞질렀다. 지난달에는 유럽차가 국내 수입차 판매량의 81.0%를 차지했다.

따라서 한·EU FTA가 잠정 발효되면 국내 시장에서는 유럽차 독주체제가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최근 다양한 가격대의 모델을 잇따라 선보여 판매량이 급격히 늘고 있는 데다 관세 인하라는 호재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유럽차들은 이미 관세 인하분을 미리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볼보코리아는 지난달 23일부터 3890만원인 C30 D4 가격을 3837만2000원으로 52만8000원 내렸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는 지난 3일부터 대부분 차종 가격을 평균 1.3% 인하했다.

이들은 최근 전시장 증설 등 국내 판매망 강화와 그동안 약점으로 지적돼온 애프터서비스 보강에도 주력하고 있다. 또 현재 유럽차에 부과되는 8%대의 관세가 2016년 이후 완전히 사라지게 되면 국산차와 가격 차이를 현저히 줄일 수 있게 된다.

업계 관계자는 “물류비용 등을 감안하면 관세 인하만으로는 유럽차 가격이 크게 떨어지기는 어렵다”면서도 “국내 완성차업계가 가격 인하, 품질 강화 등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지 않는다면 시장을 잠식당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정욱 기자 jw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