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에 반한 소년 ‘이강숙’ 자전 소설로 엮다… 장편 ‘젊은 음악가의 초상’ 펴내
입력 2011-06-29 17:51
피아노를 처음 만졌을 때, 피아노가 우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아이가 있다. 이름은 철우. 목사였던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콩나물 장사를 하는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아이다. 아버지 빈소 앞에서 1주일 동안이나 꼼짝 않고 꿇어 앉아 있다가 실신해 버린 아이. 돌담 너머 기와집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에 정신을 잃어버릴 정도로 혼미해지는 경험을 하는 아이.
2001년 ‘현대문학’을 통해 소설가로 등단한 이강숙(75)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이 두 번째 장편 ‘젊은 음악가의 초상’(민음사)에서 탄생시킨 인물이다.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물씬 묻어나는 소설은 음악을 통해 자아를 찾아가는 인간 성장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피아니스트이자 음악평론가로 평생을 살아온 작가의 통찰력은 소설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이 풍금을 치며 ‘차려’ ‘경례’라고 구령을 붙이는 순간, 소년 철우의 귀에 들리는 것은 단순히 소리가 아니라 마음을 뒤흔드는 소리였다.
“평안한 소리라기보다 마음을 흔드는, 무언가 불안한, 어디론가 가지 않으면 몸살이 날 것 같은, 그러나 불안이 해결될 때를 기다리기만 하면 기다린 보람이 있는 기막히는 안정감을 되돌려줄 것 같은 그런 소리였다.”(36쪽)
철우의 꿈은 문학가나 음악가가 되는 것. 마음속으로만 키워온 문학에의 꿈은 국어 선생님의 잔인한 한마디에 짓밟히지만 음악에의 꿈만은 접지 않는다. 철우는 음악 선생에게 노래 실력을 인정받고 콩쿠르에 나가 대상을 받으면서 그 꿈에 한 발짝 다가가지만 판검사나 의사가 되기를 바라는 어머니와의 갈등도 그만큼 커져만 간다.
“공부는 안 하고 매일 어딜 그렇게 쏘다니느냐? ‘그 녹음방송국 언제 문 닫나’ 속으로 혼자 지껄이는 말이라고 해도 어머니를 녹음방송국이라는 말로 치부한다는 것은 좀 심했다. 도저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이 자기의 입에서 터져나오는 것을 보고 철우 자신도 놀란다.”(67쪽)
중학생이 된 철우는 음악 선생이 들려주는 베토벤의 ‘월광곡’에 정신을 잃고 쓰러지지만 그 곡을 통해 소리 통로를 익히고 수많은 소리 꽃의 원형과 변형에 얽히는 신비로움을 경험한다.
“철우의 넋을 빼앗는 ‘그 소리’, ‘그 소리’의 다양한 조화는 철우의 숨통을 막히게 하는 사람들로부터 분리시키고 있었다. 이 분리된 공간과의 만남은 철우에게는 말 그대로의 숨막힘이었다.”(143쪽)
철우는 자신의 집에 피아노가 없는 까닭에 피아노만 있으면 교회이든 다방이든 친구의 집이든, 장소를 가리지 않고 ‘피아노 구걸’을 다니는 한편 전국 고등학교 성악 콩쿠르에도 도전한다. 한 지방 방송국에서 녹음한 수상곡을 철우가 나중에 라디오 가게 앞에서 듣는 장면에서 대미를 장식하는 소설은 예술이란 결국 최상의 나를 발견하는 것이라는 일관된 주제의식을 보여준다. 철우의 입을 빌려 성장통의 정체를 낱낱이 짚어낸 이 전 총장은 “음악적 소리는 마음이 듣는 것이며 음악에 감동해야 음악을 잘할 수 있다”며 “음악에서 실기는 수단일 뿐 마음속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찾는 훈련, 자기를 찾는 교육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