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원 사모의 땅끝 일기] ‘경상도사나이’ 민수의 어리광
입력 2011-06-29 17:48
“엄∼마! 엄마 우리 엄마 맞지?”
똘망똘망한 눈으로 저를 바라다보며 진한 경상도 사투리로 물어보는 일곱 살 어린 아이에게 어떻게 대답을 할지 아주 잠깐 고민을 했습니다.
“그럼! 엄마 맞지∼”
와락 제 품으로 안겨 들어오는 작은 사내아이는 한동안 저를 안고는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태어나 얼마 안 돼 이혼한 민수의 부모. 아버지가 민수를 데리고 부산에서 일용직으로 근무하다가 두 달 전 음주사고로 수감이 되면서 이곳 땅끝마을의 할머니 집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편찮으신 할머니가 도저히 아이를 키울 형편이 되지 못하자 동네 이장님이 민수의 손을 잡고 할머니와 우리 집으로 오게 된 것입니다.
이혼한 아버지 음주사고로 수감
이장님의 손을 잡고 우리집에 들어선 민수에게 이장님께서 “민수야 이제 여기가 느그 집이여. 그랑께 엄마랑 여기서 살아라 잉?” 하시자 민수는 기다렸다는 듯이 “할머니는 가도 된다. 나는 이제 우리 엄마랑 살끼다” 하며 제게로 왔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민수와의 생활은 저의 많은 시간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동안 혼자 외롭게 자라온 민수는 엄마가 많이 그리웠나 봅니다. 한시도 떨어질 줄을 모릅니다. 저의 하루는 항상 민수와 시작하고 민수와 마무리를 합니다.
아침형을 지나 새벽형인 민수는 새벽예배가 끝난 저의 손을 잡고 집 앞마당으로 나가 걷자고 합니다. 걸으면서 그동안 엄마를 만나면 해 주고 싶었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냅니다.
언제나 어린이집 현관 앞에서 맨 마지막까지 엄마 대신 데리러 오는 아빠를 기다리던 거랑, 자신도 다른 아이들처럼 엄마가 찾아와 생일파티를 해주고 함께 사진을 찍고 싶었던 거, 엄마 손을 잡고 마트에 가서 제일 좋아하는 거북알 아이스크림과 치토스를 사먹는 거, 스케치북에 가족 얼굴을 그릴 때 엄마도 그리고 싶었다는 거, 화장실에 가서 응가를 했는데 휴지가 없어서 막 소리쳤지만 아무도 오지 않아 마냥 울고 앉아 있을 때 엄마가 가장 보고 싶었다는 것….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민수는 제 손을 꼭 잡고 놓지를 못합니다.
민수에게 새로 누나와 형들도 생겼습니다. 과연 민수가 잘 놀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잘 어울립니다. 누나와 형들 때문인지 동네에 나가면 민수의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갑니다.
“느그들 내한테 까불면 우리 형아한테 혼난데이.”
자기보다 키 큰 아이들에게도 기가 죽는 법이 없습니다. 대장 노릇까지 하려 합니다. 으스대는 폼이 정말 귀엽습니다.
요즘 우리집 누나와 형들은 민수를 보면 인사말처럼 한마디씩 합니다.
“우리 민수 오늘은 혀가 쪼금 더 짧아졌네?”
민수가 요사이 저에게 말을 할 때 어린양이 가득 든 목소리로 “엄마 민수는 과자 머꼬 시뻐요.” “오메 오메! 우리민수 이러다가 혀가 진짜로 짧아지면 학교도 못 가겠네.”
그동안 얼마나 어리광이 부리고 싶었을까 하는 마음에 우리 아이들과 저는 민수의 혀 짧은 소리가 마냥 사랑스럽기만 합니다.
저녁이 되어 목욕시간에 “형들과는 절대로 죽어도 내는 같이 못 씻는다. 엄마랑 씻을끼다” 하고 욕실문 앞에서 시위하는 민수를 보며 우리 막내 은총이는 덩달아 “나도 나도” 좋아합니다.
엄마 만나면 해 주고 싶었던 이야기들
항상 시끄럽고 요란한 우리집이지만 요즘은 부산사나이 민수 때문에 웃기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민수가 크면 제가 일일이 이야기해 주지 않아도 자신의 환경을 이해하고 한가족이 된 우리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렇게 한 가족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민수가 더욱 사랑스럽고 또 든든히 잘 커가기를 오늘도 기도드리며 제 손을 꼭 잡고 놓지 못한 채 잠이 드는 민수가 꿈속에서도 행복 가득한 꿈만 꾸기를 소망합니다.
■ 김혜원 사모는
남편 배요섭 목사(전남 해남 땅끝마을 아름다운교회)만 보고 서울에서 땅끝마을 송호리로 시집왔다가 땅끝 아이들의 ‘대모’가 돼 버렸다. 교회가 운영하는 땅끝지역아동센터 아이들 50여명의 엄마로 오늘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푼다.
김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