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료 낼 돈 어딨어…” 푹푹 쪄도 선풍기 못틀어
입력 2011-06-29 11:22
독거노인 등 취약계층에게 여름나기는 생존을 위한 싸움이다. 폭염과 수해는 재앙과 다름없다. 올 여름은 심상치 않다. 폭염주의보가 지난해보다 두 달 이르게 발효됐고, 태풍이 이례적으로 6월에 한반도를 지나갔다. 올 여름을 보낼 걱정에 독거노인들의 한숨소리는 깊어만 간다.
서울의 낮 최고기온이 29.7도를 기록한 28일 강서노인복지관 소속 노인돌보미 이옥자(58·여) 사회복지사와 함께 서울 화곡동의 독거노인 가정을 찾았다. 이 지역은 지난해 9월 시간당 100㎜의 기습폭우로 '추석 물폭탄'을 맞은 곳이다.
화곡동에서 만난 독거노인들은 반지하방에서 전등도 켜지 않은 채 생활했다. 전등을 켜면 방 안 온도가 높아지고 전기요금이 많이 나올 것이라는 걱정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뜨겁게 달궈진 지열로 방의 공기는 후텁지근했다.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 이불과 옷장, 벽지는 습기로 눅눅했다.
때 이른 더위가 찾아왔지만 독거노인들은 선풍기조차 제대로 틀지 못했다. 전기료를 내느니 더위를 참는 게 차라리 낫다고 했다. 창문은 열어놨지만 창문 앞에 세워진 콘크리트 벽은 햇빛과 공기의 흐름을 가로막았다.
이 동네에서 10년째 살고 있는 김정근(80) 할머니는 "너무 더워서 모든 문을 활짝 열어놓고 싶지만 요즘 노인 대상 범죄가 기승을 부려 그렇게도 못 한다"고 말했다. 폭염이 심해지면 에어컨이 설치된 인근 경로당으로 가고 싶지만 거동이 불편한 김 할머니에게는 이마저도 쉽지 않다.
지난해 화곡동으로 이사 온 최경복(77) 할머니는 여름이면 허리 통증이 더 심해진다고 호소했다. 한의원에서 부항 시술을 받은 자리에 땀이 고여 따갑다고도 했다. 방 안의 눅눅한 습기도 허리 통증을 더했다. 최 할머니는 연락이 끊겼는데도 자녀가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되지 못해 선풍기도 마음대로 틀지 못했다.
수해의 공포도 할머니들을 괴롭혔다. 최 할머니 집은 지난해 추석, 개수대와 변기로 하수가 역류해 부엌과 화장실에 물이 찼다. 다행히 9.9m²(3평) 남짓한 방으로는 물이 들어오지 않았다. 김 할머니도 집주인이 미리 설치해 둔 전기 양수기 덕분에 주택 침수는 면했다. 할머니들은 폭우로 집에 물이 차고 전기가 끊길까봐 벌써부터 가슴을 졸였다.
이 복지사는 할머니들에게 폭염 시 활동수칙을 설명하고 지난해 공급한 '아이스팩' 사용법을 설명했다. 수해 발생 시 대피 요령과 구호기관 연락처도 다시 알려줬다. 이 복지사는 "좁은 방에서 불도 켜지 않고 지내는 어르신들은 노인우울증에 노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혼자 생활하는 노인에 대한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 관계자는 "전국에 5500여명의 노인돌보미가 활동하고 있지만 폭염이나 수해 등 재난이 발생할 때는 늘 일손이 부족하다"며 "독거노인을 방문·상담할 수 있는 봉사의 손길과 피해가정에 필요한 물질적 후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