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에… 대서양에… 남한면적 수십배 쓰레기섬 ‘바다가 운다’

입력 2011-06-28 18:16


지난해 2월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 한 편이 국제 해양학계를 술렁이게 했다. 논문 제목은 ‘북대서양 아열대 환류에서의 플라스틱 축적’. 미국 동부 앞바다에 엄청난 규모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모여 있다는 내용이었다. 해양학자들이 놀란 이유는 태평양뿐 아니라 대서양에서도 섬 모양의 해양쓰레기장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처음 확인됐기 때문이었다. 해양쓰레기 문제가 전 세계적 환경 문제로 부상했음을 의미하는 순간이었다.

◇관찰 어려운 해양쓰레기=논문을 쓴 미국 해양교육협회(SEA)는 해양쓰레기가 주로 육지에서 쓰고 버린 생활용품 조각이라고 홈페이지에서 밝혔다. 동·식물 쓰레기는 일정기간이 지나면 자연 정화돼 사라지지만 플라스틱 접시나 페트병 뚜껑, 빨대, 비닐봉지 등은 그렇지 않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해양쓰레기 중 약 80%가 육지에서 발생한다. 나머지 20%는 그물 등 선박에서 버려지는 쓰레기다.

해양쓰레기를 바다에서 육안으로 관찰하기는 쉽지 않다. 이른바 ‘해양쓰레기장’에 가까이 가더라도 판별하기 어렵다. 쓰레기가 이미 해류와 바람의 힘에 의해 잘게 부서졌기 때문이다. SEA는 북대서양 해양쓰레기장에서 발견한 쓰레기 대부분이 1㎝ 이하 크기였다고 밝혔다. 손톱보다 작다. 무게도 0.15g이하가 보통이다. 작은 쓰레기들은 수면에서부터 수심 10m 사이를 떠다닌다. 인공위성이 쓰레기 섬을 촬영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SEA는 플랑크톤 채집 때 쓰는 특수 채집망을 이용해 쓰레기를 건져냈다.

◇해양쓰레기 ‘섬’이 있다=플라스틱 쓰레기는 해류와 바람을 타고 이동한다. 해류가 대규모로 순환하는 곳에 이르면 쓰레기도 그 길을 따라 모인다. 해양쓰레기장이 형성되는데, 이를 섬으로 부르는 해양학자도 있다. 해류가 순환하는 곳을 ‘자이어(gyre)’라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5개의 아열대 대양 자이어가 존재한다.

자이어 5곳 중 ‘쓰레기 섬’이 포착된 곳은 2곳이다. 한 곳은 SEA 연구팀이 발견한 해양쓰레기장으로 북대서양 자이어에 있다. 다른 한 곳은 북태평양 아열대 자이어에 위치해 있다. 이른바 태평양 대쓰레기장(Great pacific garbage patch)으로, 하와이와 미 샌프란시스코 주 사이에 한 덩어리(동부 쓰레기장)가 있고, 일본과 하와이 사이에 또 한 덩어리(서부 쓰레기장)가 있다.

규모가 점차 커지고 있는 태평양 대쓰레기장은 1997년 찰스 무어라는 미국인에 의해 발견됐다. 지난해 SEA 추산에 따르면 이곳에는 ㎢당 해양쓰레기가 최고 75만 개나 있다. 발견 당시 남한 면적의 약 7배인 70만㎢ 정도 크기에서 140만㎢로 커졌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009년 보도했다. 지금은 남한 면적의 15배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북대서양 쓰레기장의 규모는 50만㎢ 정도로 남한의 5배다. SEA는 미국 동부 연안에서 버리는 쓰레기가 이곳에 모일 때까지 60일이 채 걸리지 않는 것으로 측정됐다고 밝혔다.

◇인체 피해 가능성=해양쓰레기는 물고기에 의해 섭취됨으로써 생태계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미 일간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의 지난 3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2008년 미국 서부 연안에서 잡힌 물고기 중 35%의 뱃속에서 플라스틱 조각이 검출됐다. 조사를 진행한 알갈리타 해양연구재단과 남캘리포니아연안 수자원연구팀은 “검출된 플라스틱은 평균적으로 2개였지만 물고기 한 마리에서 83개의 플라스틱 조각이 나온 경우도 있었다”고 밝혔다.

국제 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는 해마다 바닷새 100만 마리와 바다거북 10만 마리가 플라스틱 조각을 먹고 죽는다고 보고 있다. 바다거북의 경우 플라스틱을 한번 삼키면 토해낼 수 없는 소화기관 구조여서 특히 피해가 크다. UNEP의 올해 해양쓰레기 보고서에 따르면 해양 생물 267종이 쓰레기 피해를 입고 있다.

궁극적으로 해양쓰레기는 먹이사슬을 통해 인체에 피해를 줄 수 있다. 오염물질을 함유하기 쉽고 물에 잘 뜨는 스펀지 같은 물질이 어류에 들어갔다가 식탁에 오르는 경우다. UNEP는 “독성물질이 인체에 유입돼 암 또는 불임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바다 생명체들이 떠다니는 플라스틱을 뗏목 삼아 본래 서식지를 벗어날 경우 생태계가 교란될 가능성도 있다. 또 미 해양대기관리처(NOAA)는 홈페이지에서 “해양쓰레기는 항해에 방해가 될 뿐 아니라 연안 관광산업에도 악영향을 끼쳐 경제적 손실을 유발한다”고 지적했다.

◇국제사회 대처는 걸음마 단계=UNEP와 NOAA는 지난 3월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회의를 연 뒤 이른바 ‘호놀룰루 헌장’을 채택했다. 전 세계에 해양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플라스틱 투기를 줄이자는 취지다. 두 기관은 특히 저개발국가에 책임 의식을 주문했다. 개발 단계에 있는 작은 섬나라에서 쓰레기가 무분별하게 바다로 버려지고 있어서다. 헌장은 산업계에도 쓰레기 감축에 동참할 것을 요구했다. UNEP는 헌장을 설명하는 자료에서 한국의 쓰레기 분리수거 정책을 모범사례로 소개했다.

호놀룰루 헌장은 그 자체로 큰 의미를 지니지만 충분히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각국 정부의 관심이 부족한데다 국가간 입장을 조정할 수 있는 협의체가 마련되지 않아 강제성을 부여하기 힘들다. 따라서 현재로선 각자가 바다에 플라스틱 쓰레기를 덜 버리는 게 최선인 상황이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