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만 대중음악인인가” 함춘호의 항변
입력 2011-06-28 18:04
서울 방이동 올림픽홀에서는 지난 22일 떠들썩한 축제가 열렸다. 패티김부터 투애니원까지, 세대를 초월한 가수들이 총출동했다. 올림픽홀이 국내 최초 대중음악 전문 공연장으로 거듭난 것을 자축하기 위해서였다. 마이크를 잡은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공연장이 생겨서) 원로 가수 분들이 긴장하고 감격에 겨워 눈물을 글썽이는 걸 보니 (그동안) 우리가 못할 짓을 했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개관공연이 끝나고 온라인상에서는 한 뮤지션의 한숨 섞인 글이 올라와 화제가 됐다. 우리나라 최고의 기타 세션 함춘호(50)의 한탄이었다. 그는 트위터에 “너무 맘이 아프고 가슴이 답답하다. 가창자만이 대중음악가인가”라며 이렇게 적었다. “오늘 현장에선 한류의 주역들이 당당하게 연주자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반주 테이프 또는 노래가 다 있는 음원을 틀고 말았습니다…오늘 또 하나 비싼 무대가 생겼습니다.” 연주자를 홀대하는 우리 대중음악계의 현실을 꼬집는 글이었다.
지난 26일 올림픽홀에서 함춘호를 만났다. 그는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아코디언 연주자 심성락(74)의 50년 음악인생을 기리는 헌정공연을 앞두고 있었다. 우선 온화한 성품으로 알려진 그가 갑자기 강도 높게 정부를 비판한 이유를 물었다. 함춘호는 “연주자는 철저히 배제하고 가수만 부각되는 공연을 보는 것이 너무 속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작심한 듯 정부에 섭섭했던 감정을 쏟아냈다.
“제가 2009년부터 국내 연주자 중심으로 뮤지션 400여명이 모인 ‘한국소리모음회’ 회장을 맡고 있는 만큼 이럴 때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동안 정부의 대중음악 정책이 연주자를 뺀 상황에서 만들어지는 느낌을 많이 받았거든요. 문화부에서는 연주자를 그냥 악단, 소품으로 보더라고요.”
함춘호는 “올림픽홀 대관료가 하루에 2000만원이 넘는데 이런 공연장에서는 흥행성 갖춘 가수만 무대에 설 수 있을 뿐 연주자는 공연을 열기가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어 “의자 좀 바꾸고 내부 디자인 약간 바꾼 걸 가지고 ‘대중음악 전문 공연장’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올림픽홀 1층에 설치된) 우리나라 대중음악사를 정리한 대중음악전시관 역시 철저히 가수 중심으로만 만들어 놨다”고 비판했다.
1981년 이광조의 ‘저 하늘의 구름 따라’ 음반에 참여하며 기타리스트로 첫발을 내디딘 함춘호는 올해 데뷔 30주년을 맞았다. 90년대엔 ‘함춘호가 외국 나가면 음반 제작이 마비된다’는 말이 돌았을 만큼 그의 명성은 대단했고 현재도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금까지 그의 기타 소리가 들어간 가요 음반을 모으면 수천장이 넘는다.
그는 ‘뮤지션 함춘호’로서 꿈을 묻는 질문에 “연주 앨범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함춘호는 80년대 포크 듀오 ‘시인과 촌장’ 멤버로 활동했고 2000년대 CCM 음반을 발표한 적이 있지만, 일반적인 의미의 연주 음반은 발표한 적이 없다.
“예전엔 환갑까지만 녹음실에서 연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게 꿈이었는데 지금은 내 이름을 건 음반을 만들고 싶어요. 나의 이야기가 담긴 앨범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꿈틀대고 있거든요.”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