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조미자] 아버지의 파랑새

입력 2011-06-28 18:59


갑자기 오른쪽 갈비뼈에 빠른 간격으로 통증이 왔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아팠다. 두 주 전 감기를 앓았지만 일주일 만에 기침이 잦아드는 것 같았다. 그런데 한 주일 좀 무리했더니 몸이 따끈따끈해왔다. 밤새 기침하느라 점선 같은 잠을 잤다. 의사는 숨 쉬는 소리와 증상을 들어보더니 엑스레이를 찍자고 한다. 현상된 사진의 오른쪽 갈비뼈 아래를 가리키더니 기관지 폐렴이라고 한다.

주사실로 들어갔다. 새하얀 침상에 누웠다. 간호사는 정맥 주사액 비닐봉지를 링거에 걸었다. 20분 정도 걸릴 거라며 커튼을 닫아주더니 밖으로 나간다. 창틈으로 들어오는 뿌연 유리창의 빛이 안온하다. 간호사의 슬리퍼 소리, 밖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아득히 멀어진다. 혼자 있는 병실에서 나는 문득 아버지를 떠올린다.

아버지는 젊어서 폐가 약했다. 어머니는 보건소에 정기적으로 약을 타러 갔는데 나를 데리고 다녔다. 약을 보따리로 타오고 마름모 약종이도 가지고 왔다. 어머니와 나는 약 종이에 색깔 있는 알약을 서너 개 넣고 양쪽 귀퉁이를 잘 접어 두 번 접다 돌돌 말은 종이 끝에 길쭉하게 남은 종이 끝을 꺾어 끼웠다. 배가 불룩한 사다리꼴 약봉지들이 늘어나면 아버지의 병이 나을 거라는 신념을 가졌다.

아버지는 늘 침대에 누워 나를 맞아주었다. 언제나 손을 올려 반가움을 표시했다. 갈 때마다 반백의 윤기 없는 머리, 여느 때보다 움푹 들어간 눈과 양 볼에 깊게 파인 주름을 보면 세월과 병마가 아버지만 강타하는 것만 같았다. 아버지가 누워 있는 병상의 시트 위에 아버지의 젊음과 세월의 편린들이 조각나는 것 같아 돌아 나올 때면 눈물을 흩뿌리곤 했다. 늘 건강하셔야 한다고 하면 아버지는 “그럼” 하고 자신 있게 말했지만 내게는 여린 풀잎 스치는 소리만큼 희미하게 들렸다.

처방전을 들고 약국으로 내려왔다. 약국 옆 옷가게에 물빛 원피스가 걸렸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양장점에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해 대신 딸의 옷을 해 입혔다. 파란 원피스를 입던 날, 아버지는 “파랑새 같은데” 하며 안아 올려주었다. 옷 한 벌 변변히 해주지 못한 안타까움을 덜어낸 심정이었으리라. 이제 그 쇼윈도에 파랑새의 단발머리 대신 퍼머넌트 여인이 지나가고 있다. 건장하고 든든하기만 했던 당신, 그 가슴에 기대면 무서울 것도, 두려울 것도 없었다. 아버지와 함께 문리대 비탈길을 내려오던 날, “결혼하면 꼭 옆집에서 살아야 돼” 하며 손에 힘을 주었다. 나는 부끄러워서 아버지 손에 잡혀 축축한 손을 빼내려 꼬물거렸던 생각이 난다.

동생들은 한식 때면 저희들끼리 아버지 묘소에 다녀온다. 나는 고작 두 번 다녀왔으니 혼자 가라고 하면 찾아가지도 못할 정도이다. 그런데도 살면서 좋은 일이 생기면 아버지에게 제일 먼저 알리고 싶으니 아직도 아버지에게 나는 어린 딸이다.

약사가 약을 내준다. 약봉지에 아버지 냄새가 난다. 아버지 손을 잡고, 아버지의 바바리 주머니 속에 파랑새처럼 숨어들고 싶은 날이다.

조미자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