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파도치는 영성
입력 2011-06-28 17:41
올바른 지성과 신앙생활
우리의 인격은 지, 정, 의로 되어 있다. 인격 중에서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기능을 가져야 할 기능이 지성이다. 사람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내가 왜 사는가?’ ‘내 인생은 어디로 가는가?’ ‘내 삶의 결과는 무엇인가?’ 하는 지식이 확고부동하지 못하면 평생 동안 감정에 이끌려 살아야 한다.
중고등부 학생들이나 대학생들 중에 그저 노는 것만 좋아하고 공부가 인생의 전부냐고 말하면서 소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이들이 있다. 더 나아가 가정과 학교에서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는 이들도 있다. 이것은 지성이 올바르게 확립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녀가 부모의 간섭을 받는 것이 싫다고 하는 것 자체가 지성이 타락한 결과이다. 지성이 타락하니까 자신이 망하는 일이 그렇게 좋고, 기뻐해서는 안 될 일에 기뻐하고 희희낙락거린다.
노름꾼들을 보면 “이번에 본전만 찾으면 손 씻는다”라고 항상 말한다. 그러다가 더 많은 돈을 잃기도 하지만 운이 좋아서 본전을 다 찾을 만큼 딸 때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럴 때 이제 노름을 그만두겠다는 마음은 사라지고 “기왕에 딴 것 싹 쓸어 모으고 그만두자”라고 지성이 바뀐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도박의 유혹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자기 인생을 파멸시키고 만다. 근본적으로 지성이 타락하여 수고하고 땀 흘려서 먹고 살겠다는 경제 윤리가 없는 것이 문제이다.
인격을 균형 있게 조절하려면 무엇보다 감성 이전에 지성이 앞장서서 이것이 옳은지 그른지 해석하고 판단을 분명히 해야 한다. 감성이 이미 일을 저질러 놓은 상태가 되면 나중에 잘못을 깨달아도 때는 이미 늦는다. 감정을 버리고 깨끗한 상태에서 지성이 먼저 판단한 후에 감정이 따르고 의지가 따르게 해야 한다.
우리가 설교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먼저 “옳구나! 그렇구나! 아멘” 하면서 지성이 앞장선다. 그리고 뒤에 가서 “깨닫게 하시니 참 감사하구나!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 내가 주님 뜻대로 살아야겠다” 하면서 감성과 함께 의지가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은 지성, 감성, 의지의 3단계를 거쳐 최종 결정을 해야 된다. 그런데 이 순서가 바뀌어서 감정이 지성보다 앞서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기분 나쁘고 속상한 감정을 앞세우다 보면 옳고 그름을 잘 판단하지 못하여 지성의 타락을 가져오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타락한 감성이 지성과 의지를 이끌어 가지 못하도록 나를 잘 살펴야 한다.
교회 내에서 순간적인 감정 대립 때문에 교회를 떠나는 사람이 있다. 그렇게 교회를 나가서 굉장히 후회하지만 다시 교회로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오지 못한다. 체면 때문이다. 그 사람을 교회 밖으로 끌고 나간 것도 감정이고, 다시 돌아오는 것을 가로막는 것도 감정이다.
영적인 유익을 위해서라면 체면도, 감정도 이길 능력이 있어야 한다. 감정이 함부로 나를 끌고 다니지 못하도록 먼저 올바른 지성이 앞장서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직 성령 충만해야 한다. 성령 충만은 내 인격이 성령에게 압도당하는 것이기에 절대 타락이 용납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성령으로 판단하고 성령으로 감정을 조절하고 성령으로 뜻을 정하는 것, 즉 지성, 감성, 의지가 인격적으로 성령께 온전히 순종하는 것이 성령 충만이다.
윤석전 목사(연세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