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점자 1%’ 쉬운 수능 논란] “모의 수능 영역별 만점자 3% 변별력 없다”

입력 2011-06-28 18:07


문일고 3학년 서모(17)군은 이번 달 모의수능에서 평소보다 원점수가 올라갔지만 등급은 오히려 떨어졌다. 평소 2등급이었던 언어·수리·외국어 영역이 모두 3등급으로 밀렸다. 서군은 28일 “수능이 쉬워서 좋은 것은 원점수가 높은 것뿐이고 실제 등급을 보고 나선 가슴이 쓰리다”며 “쉬운 수능은 재수생에게만 유리하고 실수가 성적을 좌우하게 돼 변별력이 없어진다”고 말했다. 반면 같은 학교 이모(17)군은 쉬운 수능에 찬성한다. 이군은 “반에서 1∼2등 하는 애들은 수능이 쉬우면 자기 등급이 예상외로 낮게 나오기 때문에 부정적이지만 중위권 학생들은 다르다”며 “자신이 공부한 것만큼 더 높은 점수를 받아 학습 의욕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치러진 2012학년도 모의수능 영역별 만점자가 최대 3%를 넘기면서 물수능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출제를 맡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만점자를 1%로 맞추겠다지만 그래도 물수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반면 고교 교육 정상화를 위해서는 쉬운 수능으로 가는 게 옳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물수능은 현실이다=평가원이 지난 21일 공개한 6월 모의수능 채점 결과 만점자는 언어 2.18%(1만4146명), 수리가형 3.34%(6212명), 수리나형 3.10%(1만3924명) 등 이전 수능에 비해 급증했다. 언어·수리·외국어 3개영역 모두 만점을 받은 수험생은 이과생(수리가형 응시) 160명, 문과생(수리나형 응시) 573명으로 733명이었다. 2005학년도 이후 영역별 만점자가 가장 높았던 때는 2006학년도 언어영역으로 만점자가 1.88% 수준이었다. 이를 감안하면 이번 모의수능은 역대 쉬웠던 수능보다도 훨씬 더 쉬웠던 셈이다.

쉬운 수능에 비판적인 쪽은 변별력을 문제 삼는다. 모의수능 수준으로 만점자가 나온다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주요 대학의 인기학과 정시 인원보다 많다는 것이다. 실제 모의수능 인문계 언·수·외 만점자 573명은 올해 인문계 서울대 경영 및 사회과학계열, 연·고대 경영 등 최상위권 학과의 정시모집 예상 정원인 468명을 넘어선다. 자연계 언·수·외 만점자 160명도 서울대, 연대, 성대, 고대, 울산대 5개 대학 의예과 정시 모집정원인 103명보다 많다. 조효완 전국진학지도협의회장(은광여고 교사)은 “지난해 서울대의 경우 최고점 학과와 최저 학과의 수능 점수차가 20점 정도였다. 그러나 이번 모의수능처럼 쉽다면 그 차이는 5점 정도로 좁아진다”며 “이렇게 되면 실수 1∼2문제 때문에 서울대를 지원하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물수능은 기우다=변별력 문제는 최상위권 대학, 최상위권 학생들의 이야기일 뿐이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올해 수능에서는 수시로 선발하는 인원이 전체 62%, 정시로 선발하는 인원이 38%다. 수시모집은 수능 위주로 선발하지 않고 수능 성적을 최소 기준으로만 활용한다.

정시모집에서는 수능 비중이 절대적이지만 대부분 대학이 영역별 성적을 조합하거나 특정 영역에 가중치를 두기 때문에 상위권 변별에도 큰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또 언·수·외 만점자는 700명이 넘지만 사회·과학탐구(3과목 기준)까지 만점을 받은 학생은 문과 이과 각각 11명, 4명에 그친다. 대부분 대학이 탐구 영역을 2∼3개씩 반영하는 점을 감안하면 변별력 저하는 기우라는 것이다.

2012학년도 4년제 신입생 모집 인원 38만2730명 중 수능만으로 전형하는 대학은 4만3619명(11.4%)에 불과해 수능 의존도가 약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출제를 맡은 평가원도 “변별력 불만은 대입전형 요소가 다양화되면 점진적으로 해소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현 수능 체제를 설계한 박도순 전 평가원장(고려대 명예교수)도 “여러 연구 결과 수능 점수 10점 정도 차이가 나도 학생의 학력은 격차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대학이 수능 1∼2점 차이로 학생을 뽑으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진학지도 교사들 “쉬운 수능 명암 둘 다 있다”=진학지도 교사들은 “쉬운 수능 자체가 전적으로 좋거나 나쁜 것은 아니다”고 입을 모은다. 학업성취도 증가, 중·하위권 학생에게 학습동기 부여 등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반면 다른 사교육비 증가, EBS 교재 의존도 증가 등 부정적 효과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당산고 김기철 교사는 “쉬운 수능에서는 EBS 교재만 공부해도 좋은 점수를 받는 아이들이 나온다. 특목고, 자율형사립고 등에서는 싫어하겠지만 일반계고 학생들은 쉬운 수능이 더 나을 수 있다”면서도 “EBS 교재를 70%까지 연계하다보니 수학에서는 숫자만 살짝 바꾼 문제도 나왔다. 교육의 획일화를 조장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영훈고 지윤섭 교사도 “수능이 쉬우면 학생들도 자신감이 생기고 성취도도 높아진다”면서도 “상위권 학생들은 논술, 심층면접 등을 통해 경쟁에서 이기려고 하기 때문에 사교육비는 줄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성수 임세정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