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권 분산’ 6월 국회처리 물건너갔다
입력 2011-06-27 18:32
저축은행 부실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한 주요 조치로 논의돼 온 ‘금융감독기관 권한 분산’이 정치권의 책임 회피와 부처 이기주의로 결국 용두사미로 끝났다. 한국은행에 일부 사안에 대해 단독조사권을 주는 한국은행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사실상 무산됐고 차선책으로 제기된 금감원 조사권의 일부를 예금보험공사로 넘기려던 계획도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커졌다. 저축은행 부실 책임론이 불거질 때 ‘감독권한 독점을 견제해야 한다’던 정치권의 입장은 화려한 말잔치였던 셈이다.
한은법 개정안은 2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해 사실상 9월 정기국회로 넘어갔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기획재정위가 상정한 한은법에 대해 정무위원회에서 ‘금융위 설치법’ 개정안도 병합심사하자고 주장하면서 한쪽만의 법안을 추진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부처의 이해관계도 고려됐다.
실제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최근 국회 정무위 전체회의에 참석해 “(한은에 대한) 단독 조사권보다는 서로 정보와 자료를 충분히 공유하고 필요하다면 공동조사 확대 방안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은에 단독조사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개정안은 2009년 12월 법사위에 상정된 이래 1년6개월 이상 국회에서 표류했다. 지지부진했던 개정안 행보가 새삼스럽게 관심을 모은 것은 올해 초 발생한 일부 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부터다. 특히 부산저축은행 비리에 금융감독원 관계자들이 얽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지난달부터 금융기관에 대한 검사·감독 권한의 분산 여론이 높아졌다. 한때 한은법 개정안의 6월 국회 처리는 거의 확실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16일 검찰의 부산저축은행그룹 특혜인출 수사 결과로 저축은행 사태가 한풀 꺾이자 한은법 개정안에 대한 국회의 관심도 다시 떨어지면서 결국 또다시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한은법 개정안은 다음 국회로 넘어갔지만 장기간 표류하거나 폐기될 가능성이 높다. 총선을 앞둔 상황인 만큼 한은법 개정안처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힌 법안들은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국무총리실 산하 ‘금융감독혁신 태스크포스(TF)’에서 금감원 개혁의 일환으로 다뤄질 것으로 예상됐던 예보에 대한 조사권 부여도 흐지부지되는 분위기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는 당초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기관인 예보에 일부 금융기관 단독조사권을 주겠다는 안을 마련했으나 논의과정이 지지부진하다. 예보가 금감원만큼 조사에 대한 노하우도 없어 실효성에서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예보 내에서도 조사권 실시에 따른 책임소재에 휘말릴 것이라는 우려가 없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국회와 정부의 무성의, 책임 회피로 금융개혁 논의가 저축은행 사태 전으로 돌아간 셈이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이명박 정부 취임 후 갖춰진 현 금융감독체계를 건드린다는 여당의 부담감과 한은에 권한이양을 태생적으로 거부하는 정부의 자세로 인해 금융감독 기능 개편 논의는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