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모세를 뒷받침했던 아론처럼… 순교자 아버지 신앙 더 빛낸 헌신의 삶
입력 2011-06-27 17:51
박용규 총신대 교수가 회고하는 故 주광조 장로 발자취
“그는 모세를 빛나게 해준 아론 같은 지도자였습니다.”
26일 향년 79세로 소천한 주광조(사진) 장로와 생전 각별한 인연을 이어온 역사신학자 박용규(56) 총신대 교수는 27일 본보에 추모글을 보내 주 장로가 한국교회에 남긴 의미를 기렸다. 연구년으로 현재 미국 보스턴에 머물고 있는 박 교수는 주 장로를 일생동안 순교자인 아버지 주기철 목사의 신앙이 헛되지 않도록 자신의 삶을 헌신한 인물로 평했다.
박 교수는 고인의 생전 업적을 5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한국교회의 방송 선교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것. 주 장로는 공직에서 은퇴한 이후 큰 회사를 맡아달라는 친구의 청을 거절하고 극동방송 부사장으로 1993년부터 2000년까지 재임, 선교 방송 발전에 기여했다. 부사장 재임 기간 동안 무급으로 섬겼던 주 장로의 헌신이 없었다면 오늘의 극동방송은 존재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박 교수는 언급했다.
둘째, 건강한 복음주의 신앙의 저변을 확대시켰다. 그는 순교자의 자녀라는 교만함이나 우월의식 없이 탁월한 친화력으로 복음주의권 지도자들과 교류하며 연합운동에 앞장섰다. 셋째, 순교적 신앙을 한국교회에 알리며 계승하는 데 공헌했다. 해방 이후 한국교회에는 친일파가 득세, 순교자 자녀가 발붙일 곳이 없었다. 주 장로 역시 한때 교회를 떠났다. 하지만 아내의 헌신으로 다시 신앙을 찾았다. 이후 할렐루야교회 원로 김상복 목사를 비롯한 교계 지도자들과 함께 ‘주기철기념사업회’를 결성, 아버지의 신앙을 널리 알렸다. 주기철 목사와 관련된 기념강좌와 간증집회 개최, 자료 정리, 단행본 출간 뒤에는 주 장로의 땀이 서려있었다.
넷째, 한국 장로교단 내 신학교 간 교류를 이끌어 냈다. 1996년 제1회 ‘주기철기념강좌’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개최된 이후 총신대와 고신대에서 차례로 열렸다. 1959년 장로교단이 통합과 합동으로 분열되고 63년 고려파가 환원된 이후 처음으로 세 학교가 강의 교류를 한 것이다. 개최 배경 뒤에는 주 장로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주 장로는 기독교 인재 양성에 기여했다. 주기철기념사업회는 수많은 신학생에게 전액장학금을 지급, 한국 신학과 목회의 토양을 튼실하게 했다.
박 교수는 주 장로가 아버지 주기철 목사에 이르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가 남긴 발자취는 한국 교회사에 소중하게 간직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