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상배] 국립공원 즐기기
입력 2011-06-27 17:54
지난해 전국 20개 국립공원을 방문한 탐방객은 4000만명에 육박했다. 사실상 국민 1명당 한 번은 방문한 셈이다. 국민들의 여가 활용 욕구가 커지면서 국립공원 방문객이 증가한 데다 2007년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되면서 탐방 수요에 가속도가 붙었다.
탐방객이 늘면서 명산의 능선과 주요 탐방로가 몸살을 앓고 있다. 지리산 주능선은 종주꾼 무리 때문에 토사가 유실되고 나무뿌리가 그대로 드러난 곳이 많다. 설악산에서는 귀때기청봉에서 중청봉으로 가는 등산로 옆 잣나무 군락이 고사하고 있다. 연간 850만명이 찾는 북한산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등산객이 붐비다 보니 일부 탐방객이 샛길로 통행하거나 새로 길을 내는 사례가 많다.
이에 따라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샛길 입구를 바리케이드로 봉쇄하고 안내문을 게시하고 있다. 또 북한산 같은 도심형 국립공원에는 둘레길을 조성해 산 정상이나 능선으로 향하는 발길을 분산시키고 있다.
북한산이나 계룡산 등 도심형 국립공원에는 단체 산행객이 늘어나는 것도 문제다. 주말 북한산 사모바위 공터에는 10여명 또는 수십명 단위의 탐방객 무리가 둘러앉아 한정식 수준의 음식과 술을 펼쳐 놓은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몇 군데에서 단합대회 분위기를 내면 시장바닥을 방불케 한다.
그렇다고 국립공원 탐방 수요 자체를 억제할 수는 없다. 오히려 모든 국민이 자연공원의 혜택을 고루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공단은 북한산과 태안 해안국립공원에 둘레길을 만들어 정상까지 올라갈 체력이 모자라는 탐방객을 배려했다. 또 오는 8월부터는 장애인과 노약자 등을 위해 탐방로 등급제를 시행한다. 국립공원 탐방로의 경사도와 노면 상태를 평가, 등급별로 분류해 탐방객이 신체조건에 적합한 탐방로를 선택하도록 할 계획이다.
노약자나 장애인들은 국립공원을 찾을 때 깊은 산이 아니라 산의 초입에서도 새소리, 산뜻한 바람, 계곡의 물소리, 곧게 뻗은 전나무숲 등에 감동하곤 한다고 말한다. 탐방로 등급 정보가 제공되면 이들 교통 약자는 더 스스럼없이 국립공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신체적 어려움을 겪는 이들뿐만 아니라 저소득층을 위해 ‘국립공원 생태관광 바우처 제도’도 도입했다. 소외되기 쉬운 지역사회의 독거노인, 장애인, 소년소녀가장, 다문화가정 등을 대상으로 생태관광 기회를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다. 이에 필요한 재원을 뜻 있는 몇몇 기업이 후원하고 있다.
국립공원은 장애인을 위해 한발 더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탐방로나 화장실, 주차장에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하려는 시도다. 설계할 때부터 장애인 전용 공간을 만드는 대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시설 기준을 적용하려는 것이다. 올해로 탄생 44년째인 국립공원이 모든 국민이 즐길 수 있는 여가활동의 한 축을 담당했으면 한다.
이상배 국립공원관리공단 홍보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