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임항] 에너지 전환을 위해
입력 2011-06-27 17:35
올해 전례 없던 환경재앙이 잇따랐다. 구제역의 창궐, 일본의 원자력발전소 사고, 미군기지 고엽제 오염 의혹 등의 파장은 아직 잦아들지 않고 있다. 서로 성격이 다른 사안들이지만 우리 정부와 국민들에게 시급한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선순위를 굳이 따진다면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관련된 에너지 정책 전환이 단연코 앞선다고 본다.
지난 3월 원전 사고 이후 국내 원전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근본적 검토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안전성과 관련한 숱한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한 대답이 나온 게 없다. 10월쯤 대통령 소속 장관급 행정위원회인 ‘원자력안전위원회’를 구성하겠다는 것 외에 원전 정책은 달라진 게 없다.
기존 방침대로 핵 발전을 확대하든, 현 상태로 유지만 하든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는 게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기료부터 대폭 올리는 게 시급하다. 그중에서도 문제는 원가보다 턱없이 싸게 공급되는 산업용 전기요금과 심야요금, 농어업용 전기요금이다. 값싼 전기요금이 전력 낭비와 원전 건설을 부추기고, 원전은 각종 보조금을 통해 전력요금을 낮게 유지하는 악순환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전기시장은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고 있다. 원자력발전소 완공과 더불어 전기가 남아돌자 심야요금제를 만들고 남는 전기로 양수발전을 하느라 깊은 산 속 숲을 파헤쳤다. 1982년부터 2006년까지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99.5%인데 반해 전기요금은 3.3% 오르는 데 그쳤다. 우리나라의 전력소비 규모는 경제 수준에 비추어 세계에서 1위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전력소비는 1인당 국민소득이 두 배, 세 배에 이르는 독일, 덴마크에 이어 2009년 일본마저 앞질렀다. 또한 우리나라의 전력 가격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홍종호 교수는 최근 한 토론회에서 “전력낭비 심화 추세는 녹색성장 정책이 실패했다는 대표적 징표”라고 말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안정적 전기 공급도 중요하고, 원전이 여기에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영국의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체르노빌 사고 직전 “원자력이 풍부하고 안전하고 값싼 에너지”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일본의 시민과학자 고(故) 다카기 진자부로는 2000년 발간한 저서 ‘원자력 신화로부터의 해방’에서 풍부하다, 안전하다, 값싸다는 신화가 모두 허구임을 지적했다.
안전성은 차치하고 경제성만 따져 봐도 원자력 발전에는 숨겨진 비용이 너무 많다. 핵 발전은 발전소 부지 주민 지원금 외에도 홍보를 위해 지속적으로 돈을 써야 하는 유일한 에너지원이다. 전 세계에 아직 한 군데도 없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의 설치와 가동에 얼마나 돈이 들지 정확한 계산도 안 나온 상태다. 다카기는 핵에너지를 ‘끄고 싶을 때 끌 수 없는 불’, 원자력발전소를 ‘화장실 없는 맨션아파트’라고 불렀다.
원전을 확대하려 해도 부지 확보가 어렵다. 주민들 반대가 커지다 보니 정보공개가 미흡해진다. 서울과 수도권에는 원자력발전소가 없다. 서울에서 먼 서해안 쪽에 화력발전소, 동해안 쪽에는 핵발전소가 집중돼 있는 게 현실이다. 원전 의존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프랑스에는 핵발전소가 수도 파리 근처를 포함해 전국에 골고루 분포돼 있다.
지금 핵발전소를 확대하려는 나라들은 신설 계획 규모 순서로 중국 27기, 러시아 11기, 한국 7기, 인도 4기 등이다. 선진국과 거리가 멀거나 민주주의 발전 정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이처럼 핵 발전은 성격상 민주주의와 배치된다. 당장 대안이 없다고 하지만 기존 원전이 가동되는 30여년 동안 우리나라에 적합한 재생가능 에너지를 확대해 나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에너지 전환 시나리오의 개발과 그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다.
임항 환경전문기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