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임도경] ‘반값 등록금’ 절규의 뒤편

입력 2011-06-27 17:36


“고양이를 죽인 18세기 프랑스 인쇄공과 한국 서민들 심정이 다르지 않아 보인다”

1730년대 프랑스 파리 생 세브랭가의 한 인쇄소. 어느 날 밤, 견습공이 주인의 침실 지붕 위로 살금살금 올라가 고양이 울음소리를 냈다. 이를 악마의 출현이라고 믿은 주인마님은 집 주변의 모든 고양이를 없애 버리라고 지시했다. 고양이 대학살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일을 꾸민 견습공들은 결국 주인마님이 애지중지하는 고양이를 죽여 시체를 홈통 속에 숨겨 버렸다. 주인에 대한 미움을 고양이에게 풀어 버린 것이다.

당시 파리의 가내 수공업은 주인-장인-직인-견습공 체제로 움직이고 있었는데, 이들의 생활 여건은 천지차이였다. 대부분 부르주아 계급에 속했던 주인들은 호의호식했지만 프롤레타리아였던 직인과 견습공들은 주인이 기르는 고양이만도 못한 생활고에 시달렸다.

이 고양이 대학살 사건은 당시 노동자들 사이에 무언극으로 재생되면서 부르주아 계급을 조롱하는 놀이문화로 확산됐고, 결국은 1789년 프랑스대혁명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문화사학자 로버트 단턴의 시각이다.

단턴은 위로부터의 엘리트주의적 역사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역사, 즉 민중의 삶을 통해 읽는 역사서술 방법론에 혁명을 일으킨 사학자다. 그는 ‘집단의식’이 역사를 구동하는 힘이라고 믿고 있다. 이런 단턴의 역사읽기는 요즘 ‘신문화사’라는 새로운 조류를 형성할 만큼 역사학과 사회학계에 큰 자극이 되고 있다.

고양이 대학살이 프랑스혁명까지 이끈 서민의 애환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꼽힌다면 최근 ‘반값 등록금’ 파동 역시 2000년대 한국 서민들의 집단의식을 반영하는 중요한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 같다.

‘반값 등록금’ 시위는 한국사회의 혼돈상을 다 담고 있다. 고교 졸업생의 80%가 대학에 진학하는 학력 위주 사회에서 모든 비극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시장경제 논리로 따지면 수요(입시생)가 많으니 공급자(대학)가 아쉬울 것 없고, 그런 구조 속에서 등록금은 지난 20년간의 물가상승률보다 가파르게 높아져 왔다.

201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지표에 따르면 한국 사립대와 국립대 등 모든 대학 등록금이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40, 50대 학부모는 자녀 학비 부담에 짓눌려 노후 대비는 아예 생각도 못한다. 대학생 2명을 둔 평균소득 가정은 수입의 절반 이상을 등록금으로 쓰고 있다.

그러다보니 대학생들은 방학 중 몇 개의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어 일에 나서지만 등록금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수입에 결국은 미래를 담보 삼아 학자금을 대출할 수밖에 없다. 이들이 사회에 나설 때쯤이면 만만치 않은 빚을 등에 짊어지게 된다.

반면, 재단 적립금을 10조원 이상 쌓아 놓은 사립학교 재단은 법정 전입금 비율을 지키지 않고 등록금에만 의존해 학교를 운영해도 정부로부터 어떤 제재를 받은 적이 없다. 이는 정부로부터 학교 운영의 자율권을 상당 부분 침해당한 데 대한 대가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대학에서 제대로 된 교육서비스가 행해지는 것도 아니다. 교수들은 연구실적 쌓기에 급급해 수업은 등한시한다. 반면, 강의를 맡은 시간강사들은 턱없이 적은 보수로 인해 생활고에 시달리다 자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속에서 대학생들은 대학 졸업장에 걸맞은 충분한 지식을 배워가지 못한다.

정부는 어떤가. 정작 ‘반값 등록금’을 공약으로 내걸고 출범한 뒤 6조원 재원 마련이 어렵다고 난색이다. 하지만 이미 2008년에 부자감세 조치를 해서 상위 3%의 부유층은 현 정부 5년간 96조원, 그 후에도 매년 25조원 이상의 감세혜택(법인세 포함)을 보게 해 놨다. 이들은 이미 반값 등록금 이상의 혜택을 보고 있는 셈이다.

‘반값 등록금’ 뒤편의 한국 사회는 이렇게 구조적 모순투성이다. 그래서 부자들의 고양이만큼도 대접받지 못했던 프랑스의 인쇄공들이 고양이를 학살한 그 심정과 ‘반값 등록금’을 외치며 길거리로 나선 서민들의 분노가 그다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정부는 이 ‘집단의식’이 한국의 역사를 어떻게 바꿔가게 될지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임도경 한국영상자료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