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조용래] 장마전선
입력 2011-06-27 17:37
장마가 시작됐다. 엊그제 주말, 지난 한식 때부터 미뤄왔던 부모님 성묘를 다녀왔다. 장맛비에다 48년 만의 6월 태풍 ‘메아리’까지 끼어드는 바람에 불편이 적지 않았다. 몰아치는 비바람 때문에 묘소 앞에서 찬송 한두 곡을 부르는 것으로 성묘를 서둘러 마무리하고 내려와야 했다.
올해는 태풍도 그렇고 장마전선의 북상이 유난히 빠른 것 같다. 마침 자료를 찾아보니 1981∼2010년 평균 중부지방 장마 시기는 6월 24·25일∼7월 24·25일이다. 오랜만의 고향길이 비로 얼룩져 괜스레 장마 탓을 했나 보다. 하긴 현실은 늘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달리 보이기 마련이다.
이십 수년 전 일본 도쿄에서 유학생활을 막 시작하던 때. 4월 새 학기가 시작되고 기세 좋게 부지런을 떨다가 6월 초 장마를 겪으면서 향수병에 빠졌던 기억이 새롭다. 도쿄의 장마는 6월 초부터 7월 중순까지다. 처음 한두 주일은 한기를 동반하고 이후로는 눅눅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지루하게 이어지는 장마에 오한을 경험하기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런데 도쿄 장마도 올해는 지난달 하순부터 시작돼 평소보다 2주일 이상 빠르다. 분명 뭔가 심상치 않은 자연의 변화가 벌어지고 있다. 아예 우리 기상청은 2009년부터 장마전선 개시 예보를 따로 하지 않는다.
굳이 장마전선의 영향이 아니더라도 여름철에 들어서면 비가 많아져서 장마 시기를 구분하는 게 별 의미가 없다는 뜻이겠다. 이렇듯 해마다 빠지지 않는 국지성 호우는 물론 유난히 추웠던 지난겨울, 봄의 실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른 더위 등 자연의 압박은 점점 거세지고 있다.
기상청이 예보를 하든 하지 않든 장마전선은 오르내릴 것이고 그때마다 비바람에 무더위에 그리고 눅눅함이 우리를 억누를 것이다. 일본어에 사쓰키바레(五月晴)란 말이 있다. 음력 5월의 맑은 날이라는 뜻인데, 장마철에 잠시 잠깐 해님이 쨍하고 뜨는 맑게 갠 날을 말한다. 아무리 장마전선이 오락가락하더라도 맑은 날 하루쯤은 배려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는 얘기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엔 장마전선만이 낮게 깔려있을 뿐이다. 등록금문제를 비롯해 재원대책이 확실치 않은 복지방안이 중구난방으로 넘치고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 KBS 수신료 인상, 의사·약사·보건복지부 간의 갈등 등 온갖 문제들이 솟구치고 있지만 수습될 기미가 안 보인다.
정말이지 우리에게 사쓰키바레는 기대난일까. 장마전선, 참 답답하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