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국세청 전관예우 빙자 ‘사후 뇌물’ 손본다
입력 2011-06-26 22:41
검찰이 국세청 퇴직 간부들의 기업 자문료 수수 관행을 손보기 위해 칼을 빼들었다. 검찰은 기업들이 전직 국세청 간부들에게 주는 수억∼수십억원의 자문료가 정당한 세무조사에 따른 세금 추징액을 깎기 위한 범죄 자금의 성격으로 변질된 경우가 적지 않다고 보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검사 최윤수)는 최근 SK텔레콤, SK에너지, 청호나이스, 김영편입학원 등 의 세무조사 과정을 들여다보면서 국세청 퇴직 간부가 통상적 수준을 벗어난 거액 자문료를 받거나 세무조사 무마를 위해 일시금으로 수억원을 받은 혐의를 잡아냈다. 검찰은 자문료와 일시금이 형태는 다르지만 세무조사 무마 등 기업의 이해관계와 직결되는 부분이 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와 관련 검찰은 이희완(62) 전 서울지방국세청 조사2국장이 2006년 6월 퇴직 이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SK텔레콤, SK에너지로부터 매달 합계 5000만원씩 30억원 정도를 자문료 명목으로 받은 혐의를 잡고 대가성 여부를 조사 중이다. 이 전 국장은 서울지방국세청 조사2국장 시절 SK텔레콤과 SK에너지에 대한 정기 세무조사를 진행했다. 따라서 검찰은 이 전 국장이 받은 30억원대 자문료가 재직 시절 SK 계열사들의 세무조사 강도를 낮춰준 데 대한 답례 성격이거나 향후 있을 세무조사에서 국세청 후배들을 상대로 ‘역할’을 해 달라는 로비자금일 가능성을 수사하고 있다. 특히 이 전 국장은 자문료를 세무법인 계좌가 아닌 개인 계좌로 받아 온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이 전 국장이 퇴직 후 정수기 제조업체인 청호나이스에서 월 500만원씩 총 3억여원을 받은 혐의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다.
이 전 국장은 2006년 퇴직 이후 김영편입학원 회장 김모씨로부터 서울지방국세청 세무조사를 무마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3억원을 받은 혐의(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로 지난 15일 구속됐다. 하지만 이 전 국장이 SK계열사로부터 받은 자문료는 정상적으로 체결한 자문 계약서가 있기 때문에 뚜렷한 위법 사실이 확인되지 않을 경우 사법처리가 쉽지만은 않다. 검찰은 이 전 국장이 SK 측으로부터 받은 돈이 국세청 동료, 선후배 등 다른 곳으로 흘러들어간 흔적이 있는지 확인 중이다.
검찰이 국세청 퇴직 간부들의 거액 자문료 문제를 파고드는 것은 올해 벌어진 한상률 전 국세청장 비리 의혹 수사가 계기로 작용했다. 한 전 청장은 국세청장에서 물러나 미국에 체류하는 기간 중에도 SK텔레콤과 현대자동차로부터 수억원대 자문료를 받은 사실이 드러났으나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아 무혐의 처리됐다. 한 전 청장 수사를 담당했던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그 뒤로도 기업 자문료와 세무조사 관련 수사를 계속해 왔다. 검찰은 이 전 국장이 여러 기업으로부터 수수한 자문료가 당시 서울지방국세청장이었던 한 전 청장에게 일부 전달됐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용훈 기자 co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