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김승욱] 짐바브웨의 교훈
입력 2011-06-26 17:55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경쟁적으로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자, 전경련 회장과 대한상의 회장이 연이어 정치계에 경고를 보냈다. 이에 여야 모두 불쾌하게 여기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포퓰리즘을 둘러싼 갈등을 보면서 수년 전 짐바브웨가 생각났다.
영국의 직할 식민지 로디지아가 1980년 4월 18일 짐바브웨로 독립했다. 첫해에 7% 경제성장을 달성했고, 수출은 33%, 산업생산량은 15% 증가했다. 만성적인 식량수입국에서 식량수출국으로 전환돼 아프리카의 곡창이라고 불렸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역사도시 베스트 10에 들어가는 그레이트 짐바브웨라는 문화유산도 있고, 백금은 세계 2위, 크롬과 석면 리튬은 세계 3위의 생산국이 됐다.
정권을 잡은 마르크스주의자 로버트 무가베는 실용사회주의를 내걸고 시장경제체제를 유지하면서 백인들을 경제성장에 동참시켰다. 그 결과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평가되면서 ‘아프리카의 낙원’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랬던 짐바브웨 경제가 급속히 추락해 2008년 300만%라고 하는 역사상 최고 인플레이션을 기록하면서 1인당 국민소득이 55달러로 떨어져 2009년 179개국 가운데 꼴찌를 기록했다.
어쩌다가 짐바브웨가 이렇게 추락했을까? 한마디로 국민 지지를 얻기 위해 민족감정에 호소하고 선심정책을 썼기 때문이다. 무가베는 정치적 정적들을 대량학살하고 88년 대통령제로 바꾸면서 독재권력을 강화하려다 97년 총파업으로 궁지에 몰렸다. 총선을 앞두고 자신의 열성지지자들인 참전전우회를 동원해 500여개의 백인 소유 농장을 불법 점거했다. 2002년에는 백인 소유 농장을 무상환수해 대부분 자기 지지자들에게 분배했다. 그 결과 45만명에 이르는 백인 농장주 등이 짐바브웨를 탈출했다.
기업들에는 반값에 공급을 하라고 해 기업인들은 해외로 철수했고, 외국의 투자가 급감했다. 의사들의 해외탈출을 막기 위해 450대의 차를 지급하고, 2년 내에 주택을 지어주겠다고 약속하는 등 선심공약도 마구했다. 농민들에게 최첨단 장비와 원료는 물론 가축까지 무상으로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농기술이 없는 흑인들은 영농에 실패했다. 생산의 80%를 차지하는 영농 실패는 국가경제 파탄으로 이어졌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백인 농장 탈취에 항의해 경제제재에 나서면서 경제난은 심화됐다. 국민 실업률이 94%에 이르게 되고, 인구의 절반 이상은 식량난을 겪었다. 화폐 남발로 문제를 막으려고 하다가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겪으면서 1000억 짐바브웨달러짜리 화폐까지 발행했다. 결국 종이가 떨어져 2009년 9월 24일 화폐 발행을 중단하고, 미국 달러화를 자국통화로 사용하게 됐다. 그리하여 독재자 순위에서 김정일을 밀어내고 1위를 차지했다.
무가베 대통령이 백인을 적으로 돌린 이유는 국민 지지를 얻기 위해서였다. 전체 농경지의 75%를 4%에 불과한 백인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흑인 입장에선 부당하게 느껴졌다. 이것을 지적해서 국민 지지는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법치와 소유권을 무시하고 경영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명분에 의한 개혁과 포퓰리즘적 정책은 참담한 실패로 이어졌다.
최근 한국 정치지도자들의 행보를 보면서 무가베 대통령이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력이나 민주화, 국민 수준 등 여러 가지 면에서 한국과 짐바브웨를 비교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일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두 차례 경제위기에서 경험했듯이 경제란 유리그릇과 같아서 언제 갑자기 파국을 맞을지 모르는 것이다. 게다가 남북의 군사적 갈등으로 재기불능의 산업생산 파괴도 가능한 한국 현실을 생각해볼 때 전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등 유럽 선진국들도 국가부도 위기를 당하고 있는데, 짧은 기간에 급성장한 우리나라가 절대 안전지대라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우리는 짐바브웨와 다르다는 것만 믿고 안심할 때가 아니다.
김승욱 중앙대 경제사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