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강 인천 평화교회 집사 “대다수가 행복한 삶… 기독인들이 이뤄가야”

입력 2011-06-26 17:44


“복음주의 신앙의 뿌리가 없다면 이 직업에 종사하고 있지 않을 겁니다.”

이런 사명감을 피력하며 사회 각 분야에서 활약하는 크리스천을 종종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이 말의 주인공이 노동 분야의 손꼽히는 현장 전문가이자 노사관계 분야 스타 강사인 하종강(56) 인천 평화교회 집사라고 하면 의외라고 여기는 이가 적잖을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유독 ‘기독교’와 멀거나 관계없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노동운동에 ‘신앙적 양심’을 갖고 평생 몸담은 그의 사연을 들어 봤다.

1988년부터 운영한 한울노동문제연구소를 최근 정리했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실직자’라고 표현했지만 실은 그는 거르고 걸러도 매주 8∼10회 강의를 하게 된다는 인기 강사다. 강의 요청은 노동조합이 절반 정도를 차지하지만 대학생, 청소년, 기독교 단체 등에서 다양하게 들어온다.

우리사회에서 유독 노동운동에 부정적 시각이 강한 이유와 관련, 그는 “군사 독재 하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향상시키는 일이 투쟁적 성격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 이후로도 인식이 바뀌지 않는 건 ‘교육의 부재’ 탓”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정규 교육 과정에 노동권에 관한 부분이 거의 없죠. 유럽 등은 노동자로서 자기 권리를 찾는 법을 철저하게 가르쳐요. 독일은 초등학생이 1년에 6번이나 모의 노사 협상을 하는 정도예요.”

그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 학생들이 노동운동에 뛰어 드는 것은 흔한 일이었지만 그의 내력은 조금 특이하다. 청소년 때 ‘목사가 되겠다’고 서원기도를 한 적이 있어 졸업 후 신학대학원에 진학할 계획이었던 그는 기독교도시산업선교회에서 자원봉사를 하다가 ‘노동자를 위한 성경공부’의 서기를 맡은 일을 계기로 진로를 틀었다.

“20여명이 둘러앉아서 ‘누가복음의 비유’를 하루 한 대목씩 공부하는데, 첫날은 ‘돌아온 탕자’ 이야기였어요. ‘이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는?’이라는 질문에 속으로 ‘당연히 아버지와 재회하는 장면이지’ 하는데 한 여성 노동자가 ‘아들이 재산을 다 탕진하고 돼지 먹이를 먹으려는 순간’이라고 답하는 거예요. 고통을 당해 본 사람만이 ‘아, 아버지께로 돌아가자’는 결심을 할 수 있다는 거지요.”

그는 자기 또래인 스무 살 남짓의 여성이 그런 깊이를 가진 데 충격도 받고 미안함과 책임감도 느꼈다고. 그 다음날도, 다음날도 그런 충격의 연속이었다.

이때 “노동자들을 만나고 그들을 위해 일하는 게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는 졸업 후 인천도시산업선교회, 한국기독교산업개발원 등 기독교계 노동 단체에서 일하다가 1988년 12월 본격적으로 노동 상담을 시작했다.

그는 잠시 이야기를 끊고 “실은 마흔 살이 되기 직전 딱 한 번 신학대학원 시험을 봤다”고 털어놓았다. “서원기도는 지켜야 한다”고 끊임없이 환기시킨 독실한 신앙의 어머니 때문이었다. 결과는 낙방. “떨어지고 나니 하나님께 빚진 것 같던 마음이 개운해지더라고요. 대신 지금의 일이 소명이라는 생각은 강해졌죠.”

그는 “현대사회의 노동운동은 하나님 모습대로 창조된 사람이 사람답게 살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기독교인부터라도 좀 더 열린 사고를 가져 주기를 희망했다.

“우리사회는 치열하게 경쟁해서 승리한 일부만 잘사는 것에 관대하고, 평범한 대다수가 인간적으로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는 관심이 적어요. 최소한 기독교인만이라도 올바른 관점을 가진다면 세상은 더 빨리 하나님의 섭리대로 바뀌어 갈 것입니다.”

글·사진=황세원 기자 hws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