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의 ‘문화재 속으로’] (74) 사헌부 감찰 기록 ‘총마계회도’
입력 2011-06-26 17:33
조선시대 사헌부(司憲府)는 지금의 검찰이나 감사원에 해당하는 국립기관으로 이곳 감찰을 ‘총마(聰馬)’라고 불렀답니다. 총마는 청백색의 털이 섞인 말을 일컫는데 중국 후한(後漢) 때 환전(桓典)이라는 사람이 임금의 명을 받들어 각종 비리를 감찰하는 시어사(侍御史)가 되어 항상 총마를 타고 다니면서 범법자를 가차 없이 처벌한 데서 유래했지요.
사헌부 감찰은 서릿발 같은 기강을 중시한다는 의미로 ‘상대(霜臺)’라는 별칭을 쓰기도 했는데 내부 조직을 그린 ‘계회도(契會圖)’를 보면 질서와 위계가 얼마나 엄정했는지 짐작할 수 있답니다. 이 가운데 최근 보물로 지정 예고된 총마계회도(전남 화순 밀양박씨 문중 소장)는 16세기 사헌부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소중한 유물입니다.
계회도는 조선시대 관청의 비공식적인 의례 모임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것으로 사헌부 신임 감찰이 치르는 신고식인 신참례 참석 때 준비해야 할 필수 지참물이었답니다. 계회도에서 시문(詩文)은 소유자가 직접 쓰는 것이 관례였는데 총마계회도의 경우 7언시 마지막에 ‘신묘중추일(辛卯仲秋日)’이라고 쓴 것으로 보아 1591년(선조 24년) 8월에 제작된 사실을 알 수 있지요.
뒷면 하단에는 ‘밀양박씨고적정은(密陽朴氏古蹟淨隱)’이라고 소유주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정은(淨隱)은 사헌부 감찰에 제수된 전남 화순 출신 박지수(1562∼93)의 호로 신참례 때 이를 지참한 후 420년 동안 후손들에게 온전히 전해져 왔다는군요. 제작연대와 소유주가 확실한 계회도는 드물다니 총마계회도의 가치를 가늠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림은 화면 가운데 솟아 오른 봉우리를 중심으로 사헌부의 청사를 좌우대칭으로 배치하되 정문과 지붕만 그린 뒤 나머지 부분은 생략하고 그렸답니다. 참석자들의 수만큼 여러 점을 제작해야 하는 관계로 가급적 간략하게 그린 것이 특징입니다. 산을 묘사한 부분은 짧은 선을 반복한 단선점준으로 조선 초기 안견 화풍의 흔적이 엿보인답니다.
총마계회도에 기록된 인물은 모두 24명으로 당시 사헌부 감찰의 정원 수와 같다고 합니다. 개인마다 품계, 관직, 이름, 자(字), 본관을 적었고 한 줄을 바꾸어 당사자 아버지의 품계와 관직, 이름을 간략히 기록했습니다. 16세기 계회도로는 드물게 종이에 수묵으로 그려 헤진 부분도 있지만 당시 중앙관청의 관행과 계회도의 특성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재랍니다.
총마계회도를 보면서 조선시대 사헌부 감찰직 신임 관원들이 신참례에 참석해 가졌을 포부와 각오를 상상해 봅니다. ‘국가의 봉록을 받은 공직자로서 사심은 버리고 오로지 사회정의를 위해 한 몸 바치겠다’는 다짐이었다면 너무 오버한 것일까요? 사헌부 감찰을 잇는 검찰과 감사원이 요즘 온갖 구설에 올라 노파심에서 해본 생각입니다.
문화과학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