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독고진 집’ 김종영미술관 전시 2제… 나무 깎고 종이 눌러 빚은 ‘최고의 사랑’
입력 2011-06-26 17:33
지난 23일 막 내린 MBC 드라마 ‘최고의 사랑’에서 주인공 독고진(차승원)이 살던 집은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이다. 추상조각의 선구자 김종영(1915∼82)의 예술세계를 조명하기 위해 2002년 개관한 이 미술관은 북한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 좋은 풍광과 조각 작품이 옹기종기 놓여 있는 아름다운 정원 등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진 문화명소로 자리잡았다.
이곳에서 두 가지 전시가 열리고 있다. 본관 ‘불각재(不刻齋)’에서는 김종영의 채색 목조각과 드로잉으로 구성된 ‘여름에서 가을 사이’가 11월 30일까지 이어진다. 이번에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은 김종영의 채색 목조는 꽃, 새순, 나뭇가지 등을 연상시키면서 솟아오르는 생명력과 율동감을 느끼게 한다. 삼각형과 사각형을 기본으로 기하학적 순수 조형미를 선사한다.
빨강 노랑 연두 등 다양한 색깔의 조각 작품에 맞춰 전시장 벽면을 색칠해 김종영의 어록들을 적었다. ‘예술은 사랑의 가공’ ‘영원의 사상을 통역하는 예술’ ‘예술의 목표는 통찰’ ‘무한한 공간, 영원한 생명은 예술의 4차원 세계’ 등 문구들이 드라마 ‘최고의 사랑’에서 독고진과 구애정(공효진)이 주고받은, 알 듯 모를 듯한 사랑의 밀어들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해 말 개관한 신관 ‘사미루(四美樓)’에서는 서울대 조소과를 나와 미국에서 활동하는 미디어 작가 김신일의 ‘제3의 아름다움’ 전이 7월 28일까지 열린다. 종이를 도구로 눌러 튀어나오거나 들어간 부분으로 문자나 형상을 만들어내는 압인(押印) 드로잉, 언어가 지닌 권력을 해체시킨 문자조각, 특정 대상물을 4000배 확대해 보여주는 영상사진 등을 선보인다.
‘MOMENT’(순간) 등 알파벳 문자를 조각한 작품에는 작가가 영어 단어를 접할 때 그 의미보다는 형상을 먼저 보게 되는 경험을 담았다. 사진의 이미지를 4000배로 확대하고 영상화시키는 작업을 거친 영상사진은 무심코 지나쳤던 익숙한 이미지들 속에 숨겨진 다양한 색들에 초점을 맞춘다. 눈으로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빛 그리고 압인 드로잉’에서는 색의 개입을 차단하고 선과 빛만을 남기는 작가의 독창적인 작업들을 보여준다. 압인 작업을 거쳐 만들어진 보이지 않는 무수한 선들은 빛을 통해 그림자가 드리워지면서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인물상 등 작품이 “눈은 마음이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만 본다”고 한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그르송(1859∼1941)의 격언을 상기시킨다.
작가는 “빛은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으며 세상 모든 것을 드러내준다. 우리는 빛 자체를 보지 못하고 그것이 비추는 것을 본다. 공(空)하기에 세상을 있는 그대로 그 안에 담는다”고 작품의 의미를 설명했다. 눈이 지닌 한계 때문에 볼 수 없는 제3의 아름다움을 제시하는 이 전시는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마음속 ‘최고의 사랑’이 진정 어떤 것인지 돌아보게 한다(02-3217-6484).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