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군에 “예수 믿으라” 외치다 집단 순교… 66명 희생된 병촌성결교회

입력 2011-06-24 17:54


충남 논산의 한 작은 마을 성동면 개척리. 신앙의 절개로 믿음의 반석을 이룬 병촌성결교회(임용한 목사)가 서 있다. 사람들은 이곳을 ‘은혜의 땅’이라고 부른다.

올해 6·25를 앞두고 찾아간 병촌성결교회는 조용했다. 그러나 61년 전 6·25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 예배당은 인민군에 잔혹하게 짓밟혔다. 1950년 7월부터 이 마을에선 처참한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마을을 장악한 인민군이 병촌성결교회 김주옥 집사를 죽이기 위해 정미소에 가뒀다. 신앙이 투철했던 그를 회유하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유엔군의 인천상륙으로 전세가 불리해지자 그해 9월 27∼28일 인민군은 만행을 저질렀다. 성도 66명을 마을 뒷산으로 끌고 가 위협했다. “예수를 믿으면 다 죽여버리겠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정수일 집사는 시부모와 시동생, 아들, 딸, 조카 등 일가족 10명과 둘러앉아 기도와 찬송을 하며 끝까지 믿음을 굽히지 않았다. 당시 31세로 만삭이었던 정 집사는 “인민군은 패전할거니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라”고 담대하게 외쳤다.

인민군은 분노에 사로잡혔다. 몽둥이, 삽, 죽창 등을 들고 성도들을 무참히 죽였다. 정 집사는 “하나님, 내 영혼을 받으세요”라면서 어린 아들을 꼭 끌어안고 숨을 거뒀다.

김 집사와 순교한 정 집사의 남편 우제학 집사, 노미종(94·당시 집사) 권사는 감금되었거나 잠시 몸을 피했다가 죽임을 면했다. 이들은 “살아있는 순교자가 될 것”을 다짐하며 교회를 재건하는 데 힘썼다. 56년 3월 52평짜리 순교자기념 예배당을 신축했다. 3년 뒤 교회 뜰에 ‘6·25동란 순교자기념비’를 건립했다.

훗날 병촌성결교회 1대 장로가 된 김 집사는 96년 하나님의 품에 안기기 전까지 화해와 평화를 전하는 데 앞장섰다. 노 권사는 당시 상황을 증언하며 한국교회에 순교의 정신을 알렸다. 그러나 일순간 가족을 잃고 힘겹게 살던 우 집사는 아내와 달리, 끝까지 신앙을 지키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81년 병촌성결교회는 새 성전을 건축했고, 89년 교회 입구에 ‘66인 순교기념탑’을 건립했다. 기념탑 외에 이렇다 할 기념물이나 순교의 흔적이 거의 없었다. 2008년 11월 임용한 목사가 생존자의 증언을 토대로 유해발굴 작업을 했다. 정 집사와 시어머니 홍성여씨 등 다섯 구를 찾아내 순교기념탑 아래로 이장했다. 정 집사가 허리춤에 찼던 고무줄, 홍씨의 비녀도 수습했다. 임 목사는 교회 뒤편 인삼밭을 매입해 게스트하우스를 갖춘 순교기념관을 건축하기 위해 기도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순교의 피값으로 세워졌는데 요즘 정직, 자기희생 등을 많이 잃어버린 것 같아요.” 임 목사는 아쉬워했다.

논산=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