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션 블록버스터 영화 ‘퀵’ 연출 조범구 감독 “흥행 참패이후 백수생활… 퀵! 퀵! 일어섭니다”
입력 2011-06-24 17:41
영화 ‘퀵’을 연출한 조범구(39) 감독의 눈매는 ‘헝그리 복서’의 그것처럼 매서웠다. 언뜻 보기에 그는 여유로워 보였지만 눈에 배인 절박함만큼은 감추지 못하는 것 같았다. 영화 개봉을 꼭 한 달 앞둔 21일 저녁 서울 신문로2가 한식당에서 조 감독을 비롯해 ‘퀵’ 제작자로 나선 윤제균(42) 감독과 출연 배우들을 함께 만났다. 조 감독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가 왜 그런 눈빛을 보였는지 이해가 됐다.
“전 사실 실패한 감독이었어요. 2006년 ‘뚝방전설’이 흥행에 참패하고 백수처럼 지냈습니다. 돈이 없어서 서울에 거처를 구하지 못하고 강릉에서 살았습니다. 먹고 자고 입는 문제야 어찌어찌 해결할 수 있었어요. 가난은 조금 불편할 뿐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저를 아무도 감독으로 써주지 않는다는 건 참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이렇게 큰 영화를 맡았으니, 제 인생에서 이것보다 더 큰 일이 있을까요?”
조 감독은 돈에 쪼들린 생활이 오히려 자신에게 겸손과 성찰과 열정을 안겨주었다고 했다. 한 달 휴대전화 요금이 3만원을 넘지 않는다는 그는 지금도 걸려오는 전화만 받는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자신을 잊지 않고 안부를 묻는 지인들의 전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됐다는 식이다. 그는 또 영화 ‘퀵’을 준비하면서부터 지금까지 고시원 생활을 하고 있는데 이런 절박한 상황이 자신을 영화에만 몰두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곁에서 조 감독의 말을 경청하던 윤 감독은 “할리우드의 ‘스피드’나 프랑스의 ‘택시‘처럼 스피디한 액션 영화를 국내에서 찍는 게 결코 쉽지 않았는데 조 감독이 멋지게 소화해내 뿌듯하다”며 “이번 영화로 조 감독이 다시 일어서길 바란다”고 말했다.
‘퀵’은 퀵서비스맨인 기수(이민기)와 아이돌 가수 아롬(강예원)이 폭탄 테러에 휘말리며 겪는 사건을 다룬 액션 블록버스터. 2009년 ‘해운대’로 1100만 관객을 동원한 윤 감독이 제작자로 나서고, 역시 ‘해운대’에 함께 출연하며 인연을 맺었던 이민기와 강예원, 김인권이 다시 뭉쳤다. 제작기간 4년에 영화 촬영을 위해 파손된 차량과 오토바이만 100여대에 이르는 등 100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갔다.
윤 감독은 술이 몇 순배 돌자 불콰해진 얼굴로 분위기를 북돋았다. “영화는 결국 사람들이 만드는 종합예술이잖아요. 그만큼 배우나 스태프 간 조합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민기나 (강)예원이, (김)인권이 등 세 배우들이 얼마나 서로 의지하고 잘해줬는지 몰라요. 가족처럼 호흡이 척척 맞으니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을지 몰라도 즐겁게 촬영했습니다.”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두 감독과 오랫동안 동고동락해서인지 세 배우들에게서는 영화배우 특유의 거리감을 느낄 수 없었다. 이들은 식사자리에서도 스스럼없이 술잔을 주고받거나 솔직한 속마음을 털어놓는 등 소탈한 모습을 보였다. 김인권은 친근한 표정으로 “앞으로 형, 동생으로 지내요”라며 어깨동무를 해왔고 이민기는 말수는 적었지만 어떤 질문에도 성심껏 대답했다. 영화의 홍일점 강예원은 “일부에서 톱스타가 나오지 않는 영화라고 지적을 하시지만 그래도 저희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모든 열정을 쏟아 만든 영화에요. 처음부터 톱스타인 사람이 어디 있나요. 여러분이 예쁘게 봐주시면 그게 바로 톱스타 아니겠어요?”라고 말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