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백혈병 첫 産災 판결이 주는 의미

입력 2011-06-24 17:49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에 걸려 숨진 직원들에 대해 법원이 산업재해로 판단한 것은 의미가 크다. 그간 논란이 돼왔던 반도체 공장의 작업환경과 백혈병 발병의 인과관계를 인정한 첫 사례이기 때문이다. 상급심이 남아있긴 하지만 1심 법원이 산재 인정 범위를 기존보다 폭넓게 해석했다는 점은 진일보한 판결로 평가할 수 있다.

서울행정법원은 엊그제 삼성전자 기흥공장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일했던 이모·황모씨 유족들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유족급여를 지급하라”며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백혈병 발병 원인이 의학적으로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더라도 사업장의 각종 유해 화학물질과 전리방사선 등 발암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돼 백혈병이 발병했거나 적어도 발병이 촉진됐다고 추정할 수 있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이씨와 황씨가 2006, 2007년 각각 숨지기 전까지 가장 노후화된 기흥 생산라인 수동설비에서 세척작업을 한 점도 중요한 고려 대상이 됐다.

이에 삼성 측은 공인된 국가기관의 역학조사 결과와는 다른 판결이라고 반박했다. 추후 상급심에서 객관적 진실이 정확히 규명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물론 따질 것은 따져야 한다. 하지만 일단 1심 법원의 판단이 나온 만큼 일류 대기업으로서 이를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번 사태의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작업환경 개선 등에 앞장서야 하는 이유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임직원 건강이다. 안전한 근무환경 마련에 더욱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아울러 원고를 포함한 산재 근로자 문제도 적극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게 배려의 정신을 실천하는 길이다.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도 산재 업무와 관련해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 피해자 개개인들이 직업병과 업무 간 연관성을 입증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기업 편이 아니라 근로자 편에 서서 업무상 재해 인정 범위를 확대하는 등 제도 개선을 강구해야 한다. 특히 이번 판결을 계기로 다툼의 여지가 많은 직업성 암의 산재 판정에 대해 구체적인 보완책을 마련할 것을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