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통치 못해본 나라 세계적 작품도 없었다”
입력 2011-06-24 18:06
세계문학…/도서출판b
2년 전, 비평집 ‘한국문학과 그 적들’에서 “한국에 읽을 만한 장편소설이 부재하는 이유는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장편비평이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던 젊은 평론가 조영일(40·사진)이 최근 펴낸 장편비평집 ‘세계문학의 구조’(도서출판b)는 우선 도발적인 담론이 눈에 띤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미국과 유럽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사례를 두고 한국문학의 세계화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고무된 시점에서 나온 이 비평집은 한 마디로 이런 고무적인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비평서다. 이에 따르면 한국에는 세계문학의 초석이라 할 근대문학이라는 것 자체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다. 저자는 “근대문학이 발달한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를 판별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로 국민작가의 존재 유무”라면서 이렇게 주장한다.
“우리에겐 왜 셰익스피어나 괴테 같은 작가가 없는 것일까요?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근대문학을 받아들인 이웃나라의 루쉰이나 나쓰메 소세키 정도만 있었어도 한국문학연구자들은 좀 더 그럴싸하게 자신의 존재 이유를 발견했을 겁니다.”(77쪽)
한국에도 이광수, 김동인, 염상섭, 이상, 채만식, 박태원 등의 작가가 있었지만 그들의 작품은 국외는커녕 국내에서조차 현재 거의 읽히지 않는 작가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러일전쟁 승리가 일본문학에서의 호기라고 예견한 나쓰메 소세키가 일본의 국민작가가 되었으며 일본의 근대문학은 러일 전쟁의 승리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좋고 나쁘고의 문제를 떠나 한국근대문학이 발전하지 못한 이유를 굳이 찾는다면 그것은 아마 ‘제국주의적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것(그리고 식민지를 가져보지 못한 것)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103쪽)
저자에 따르면 근대문학이란 모든 국가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예술이라기보다는 특정 국가에서 발전한 매우 특수한 예술양식이다. 이른바 세계문학을 생산하는 나라들이란 하나같이 과거에 국민전쟁을 경험하고 식민지까지 경영해본 경험이 있는 제국주의 국가들로 제한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문학적 자산이 거의 존재하지 않아서 서구콤플렉스에 시달리던 근대 일본이 어떻게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두 명이나 배출하는 문학대국이 되었는가와도 관련된다.
따라서 저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엄마를 부탁해’의 미국시장 진출을 ‘한국문학의 첫 눈’으로 보고 감동하는 것이나 노벨문학상 수상을 선진국 내지 문화국가라면 반드시 성취해야 할 목표로 보는 것은 근대문학이 부여한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 이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일견 급진적일 수 있는 저자의 이 같은 주장은 또 다른 비유럽 국가인 후진국 러시아에서 어떻게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와 같은 위대한 소설이 연이어 나올 수 있었는가, 라는 분석을 통해 더욱 설득력 있게 전개된다.
이러 논증을 통해 저자는 “한국문학의 빈곤함에 탄식하는 것도, 또 애써 과장하여 서구문학과의 동등함을 주장하는 것도 지극히 우스운 짓이다”라고 단언한다. 뿐만 아니라 한국문학의 세계화 요구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배경으로서 ‘교양에의 몰입’을 권유하는 사회분위기와 그에 일조하는 문화지식인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날리고 있다. ‘보론’으로 실린 ‘세계문학전집의 구조’에서는 최근 한국출판계의 화두 중 하나인 ‘세계문학전집’을 문제 삼으면서 그것이 왜 1990년대 후반부터 출간되었고 또 2000년대에 들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지를 당대 한국의 사회적 변화에 주목하면서 논하고 있다.
정철훈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