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中 1급 작가 옌롄커 “중국은 ‘개혁·은폐·망각’ 세가지 현실이 공존하죠”

입력 2011-06-24 18:06


나와 아버지/자음과모음

“저는 아마도 중국작가들 가운데 고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중국에서 가장 문제적인 작가 가운데 한 명인 소설가 옌롄커(閻連科·53)가 한국을 찾았다. 3년 전 청암포스코재단 주최 문학포럼에 참석한 것을 비롯, 세 번째 방한이다. 대표작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2004)는 판금조치되어 초판 3만부가 전량 회수된 작품. 오히려 국외에 널리 알려져 세계 20여개국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마오쩌둥이 만든 인민해방군의 경건한 슬로건을 불륜에 빠진 사단장 아내와 취사병 사이의 은밀한 침실행 신호로 바꿔버린 소설은 출판, 홍보, 게재, 비평, 각색을 할 수 없는 5금(禁) 조치를 당했다. 이번 방한은 소설 ‘나와 아버지’(자음과모음)의 국내 출간이 계기가 됐다. 23일 열린 간담회에서 그는 중국문학 현실에 관해 매우 진솔하게 입을 열었다.

Q ‘고아’란 어떤 의미인가.

“나를 포함한 소수의 작가들은 투쟁하듯 글을 쓴다. 나 역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가 판금 조치된 경험이 있다. 이로 인해 독자들은 나에 대해 논쟁과 비판을 좋아하는 작가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Q ‘나와 아버지’는 그런 비판의식을 찾아볼 수 없는 자전적 성장기를 그리고 있는데.

“이 작품을 통해 진짜 옌롄커를 만났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중국에서 30만부나 팔렸다는 건 작품에 특별히 사회 비판 같은 게 없어서일 것이다. 중국에는 세 가지 현실이 존재한다. 첫째는 모든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는 세계, 즉 개혁개방 이후 발전된 중국의 모습이다. 정부는 이렇게 드러난 세계에 대한 글쓰기를 환영한다. 둘째는 은폐된 진실의 세계다. 난 이에 대해 많은 글을 써왔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딩씨 마을의 꿈’ 같은 소설이 그것이다. 앞서 홍콩에서 출간된 소설 ‘사서’는 1960년대 중국의 대기근으로 3000만명이 사망한 재앙을 그렸다. 이 수치는 한국 인구의 3분의 2, 대만 전체인구와 맞먹는다. 정부는 자연재해라고 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다. 이게 은폐된 세계이다. 셋째는 잊혀진 세계다. 잊혀진 건 역사다. 중국의 신세대인 80년대 세대는 역사를 잘 모른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어떤 고통을 받고 살아왔는지 모른다. 그들에게 가족애에 대한 기억을 전하고 싶어 ‘나와 아버지’를 썼다.”

Q 문화혁명을 개인적으로 어떻게 보는가.

“그건 겉으로 10년간의 혁명이었지만 실은 1949년 연안에서부터 시작되어 아직도 끝나지 않은 혁명이다. 지금도 신문이나 문학작품에서 문화혁명 당시의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중국이 정말 변화하려면 문화혁명의 언어에서 벗어나야 한다.”

Q 당신은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명되기도 하는데.

“그런 때가 아니다. 차라리 한국 작가가 먼저 수상해야 한다. 중국은 아직 글쓰기가 자유롭지 않다. 위대한 작품이 되려면 무한한 상상력을 펼쳐야 하는데 중국은 현재 그렇지 못하다.”

Q 당신은 중국작가협회 소속 1급 작가다. 협회 소속 작가는 정부에서 주는 월급을 받는데, 월급을 받으면서 정부에 비판적인 글쓰기가 가능한가.

“사실 그건 북한도 마찬가지다. 장단점이 있는데 우선 작가들이 경제적 안정감을 갖고 작품을 쓸 수 있는 게 장점이라면, 월급을 받으면서 정부를 비판하기 힘들다는 게 단점이다. 그런 점에서 난 정부에 좀 미안하다. 정부에서 작가를 관리하고 있는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중국독자들이 이 시스템에 길들여져 있다는 점에 있다. 길들여진 독자들은 정부 비판적인 작품을 환영하지 않는다. 이건 대단히 복잡한 문제다.”

Q 판금 작가임에도 불구, 당신이 베이징에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건, 비판의 수위 조절 때문인가.

“뭔가 오해가 있는 듯싶다. 중국은 개혁개방 30년째로 작가 상황도 많이 개선된 상태다. 30년 전이라면 난 감옥에 있을 것이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마음껏 글을 쓸 수는 있지만 출판사가 출간을 거절한다. 정부는 출판사를 관리한다. 결국 정부가 원하지 않는 작품은 출간될 수 없다. 내가 1급 작가가 된 것은 젊은 시절에 쓴 작품 덕분이다. 지금이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Q 당신은 스무 살이던 1978년 인민해방군에 입대해 2005년까지 28년간 군복무를 했다. 사병 시절부터 군 소속 작가로 글을 써왔는데 그때의 경험이 작가로서 도움이 됐나.

“내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시절이었다. 이 시절을 통해 난 국가의 힘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알게 되었다. 내가 권력이나 돈을 위해 글을 쓰지 않게 된 계기도 그것이다. 내 글쓰기의 방향은 현실과 인간이라는 쪽으로 정해졌다. 권력과 돈은 작가를 힘들게 하고 글쓰기를 방해한다. ‘나와 아버지’는 작가로서 쓰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쓴 것이지, 어떤 권력이나 상을 얻기 위해 쓴 것이 아니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