퓰리처상 수상 워싱턴포스트 기자 “18년간 불법체류자였다”
입력 2011-06-23 19:01
그는 27세에 퓰리처상을 받았다. 수상작인 워싱턴포스트(WP) 취재팀의 2007년 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 관련기사 9건 중 2건이 그가 쓴 기사였다. 지난해에는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를 단독 인터뷰하고 그의 프로필도 썼다.
이른바 ‘잘 나가는’ 기자였던 호세 안토니오 바르가스(30)가 필리핀 출신 불법체류자로 미국에서 18년간 살아왔다는 사실을 22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기고를 통해 털어놨다. 그는 미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도 비밀을 고백했다.
바르가스는 자신이 불법체류자임을 깨달은 게 16세 때였다. 운전면허를 신청하러 간 자리에서 영주권(그린카드)이 가짜라는 얘기를 들었다. 4년 전 고향 필리핀에서 어머니가 그를 미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에 태워 미국에 있는 할아버지에게 보냈던 때가 떠올랐다.
바르가스는 기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신문에 이름이 실리면 누구도 체류 신분을 의심하지 않을 것 같았다. 성적이 뛰어났던 그는 장학금을 받고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에 입학했고, 재학 중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등에서 인턴기자로 활동했다.
WP는 전에 일했던 신문사들과 달리 운전면허 제출을 요구했다. 궁리 끝에 발급절차가 까다롭지 않은 오리건주에 가짜 서류를 내 운전면허를 발급받아 WP에 들어갔다. 22세 때였다. 그는 “불법인 걸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2009년 WP를 그만뒀다.
지난해 인터넷 매체 허핑턴포스트에서 편집담당 수석 에디터로 활동했으나 유효기간 8년인 오리건주 운전면허 기간 만료가 다가오면서 압박감을 느껴 1년도 안돼 사직했다. 워싱턴주 면허증을 손에 넣어 앞으로 5년간 더 거짓 삶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스스로 접었다.
바르가스는 최근 ‘미국인을 규정하자’는 단체를 설립하고, 시민운동가로 변신했다. 불법체류자 자녀가 합법적 체류 자격을 얻을 수 있게 한 새 이민법 ‘드림법(DREAM Act)’의 의회 통과를 위해 노력할 생각이다.
바르가스는 애초 기고를 전 직장인 WP에 실으려 했다. 하지만 WP는 ‘내부 검토’를 이유로 글을 싣지 않기로 결정했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