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토양시추 꺼리는 이유 있었다… 살충제 린단 기준치 4380배 초과

입력 2011-06-23 18:19


주한미군이 23일 경북 왜관 캠프 캐럴 기지의 오염 실태를 조사한 과거 보고서 두 권을 공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발암물질을 포함한 각종 오염물질이 기준치의 최고 4380배를 초과했다. 이 보고서만으로 미군이 기지 내부에 고엽제를 파묻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토양 시추조사를 꺼리는 이유는 분명해졌다.

◇살충제 ‘린단’ 기준치 4380배=주한미군이 삼성물산에 위탁해 실시한 2004년 조사에선 각종 오염물질이 엄청난 수치로 검출됐다. 살충제 성분인 린단은 8.76㎎/ℓ가 검출돼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치인 0.002㎎/ℓ를 4380배 초과했다. 이 물질은 중추신경계 자극을 유발하고 흡입했을 때 치명적인 재생불량성 빈혈을 일으킬 수 있다.

맹독성 발암물질인 트리클로로에틸렌(TCE)이 1.4㎎/ℓ, 테트라클로로에틸렌(PCE)은 0.427㎎/ℓ 검출돼 각각 기준치를 최고 46.6배, 4.27배 초과했다. 이 물질은 금속에서 기름기 성분을 제거하는 세척제 용도로 쓰인다. 살균·세척제로 사용되는 맹독성 물질인 페놀은 0.291㎎/ℓ이 검출돼 기준치(0.005㎎/ℓ)보다 58.2배 높았다. 중금속 물질도 고농도로 검출됐다. 비소(24.2㎎/ℓ), 크롬(11.6㎎/ℓ), 수은(0.808㎎/ℓ)은 각각 기준치를 2420배, 232배, 134.6배 웃돌았다.

◇토양 시추 꺼린 이유=고엽제 매몰 여부를 가려낼 만한 조사 결과는 실려 있지 않았다. 관측정 1곳에서 고엽제에 포함된 다이옥신 성분인 2, 3, 7, 8-TCDD가 검출된 것으로 나타났지만 이 성분은 소각 등 다른 경로로도 생성되기 때문에 직접 증거로 보기엔 부족하다.

1992년 미 육군 공병단이 작성한 보고서는 “고엽제가 캠프 캐럴에 저장됐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보고됐지만 관련된 문서를 제공받지 못했다”고 언급했다. 2004년 보고서는 “D구역은 유해폐기물 매립지로 확인됐으며, 77∼82년 수많은 유해물질이 처분됐다”고만 밝혔다.

캠프 캐럴은 미군의 군수품 보급과 정비를 담당하는 기지다. 유기용제, 석유, 윤활유, 살충제, 제초제, 산업용 화학물질 등 각종 유해물질을 40여년 동안 부대 안에서 다뤄 왔다. 기지 내 41구역은 맹독성 물질인 DDT를 포함한 100여종의 화학물질이 드럼통에 담겨 보관된 지역이었고, 76∼81년 누출사고가 빈번히 일어나 토양 변색과 유해물질 웅덩이가 목격됐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는 미군이 토양시추를 통해 신속히 오염 현황을 파악하자는 정부와 시민사회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배경으로 지목된다. 고엽제 성분 외에도 수많은 치명적인 오염물질이 고농도로 검출될 경우 불리한 상황이 초래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