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정태] 담뱃갑 경고 그림
입력 2011-06-23 17:53
흡연 폐해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담뱃갑 건강 경고 그림은 2001년 캐나다가 처음 도입했다. 흡연 욕구 감소와 금연 유도를 위한 조치다. 제도 도입 이후 캐나다 흡연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흡연율이 2000년 24%에서 제도 도입 5년 뒤인 2006년 18%로 낮아졌다.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나타나자 이 제도를 채택하는 나라가 꾸준히 늘었다. 현재 담뱃갑 경고 그림을 도입한 나라는 영국 브라질 태국 호주 홍콩 등 39개국이다.
호주의 경우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아예 담뱃갑을 칙칙한 황록색으로 바꾸는 법안을 지난 4월 마련했다. 흡연자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황록색이 가장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색상으로 나왔기 때문. 포장 색상을 획일화하는 건 세계 최초다. 담배업계가 반발하고 있지만 호주 정부는 내년 발효를 목표로 이 법안을 다음 달 하원에서 통과시킬 계획이다.
세계 각국이 담배와의 전쟁을 벌이는 가운데 미국은 모든 담뱃갑에 부착할 경고문 9개를 최근 공개했다. 흡연 위험성을 알리는 끔찍한 사진이 포함된 경고문이다. 기도에 구멍이 뚫려도 담배를 끊지 못해 그 구멍으로 담배연기가 새어나오는 모습 등이 담겨 있다. 담배회사들은 내년 9월부터 담뱃갑 앞뒤 면적의 50%를 이러한 경고문으로 채워야 한다. 이번 조치로 미국은 담뱃갑 경고 그림 부착을 의무화하는 40번째 국가가 됐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담뱃갑에 경고 메시지는 있으나 세계보건기구가 권고하는 경고 그림은 없다. 17대 국회 때 경고 그림을 넣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됐으나 국회의원들이 깔아뭉개는 바람에 폐기됐다. 18대 국회에서 지난 4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이 논의될 때 경고 그림 삽입이 다시 쟁점으로 떠올랐지만 의원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실효성이 낮고 시기상조다.” 이게 반대 이유라는데 어이가 없다. 관련 업계에서 떡고물이 떨어질 것을 기대해서인지 국민 건강은 안중에도 없다.
업계 로비와 이익단체 압력에 굴복한 국회의원들이 국민을 무시해 온 게 어디 이것뿐이랴. 가정상비약 슈퍼 판매 문제도 그렇다. 우여곡절 끝에 정부가 약사법 개정안을 제출한다고 해도 국회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다. 내년 총선을 앞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의원들이 약사들의 표를 의식해 벌써부터 부정적 의견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 총선에서 국민이 이들 의원을 심판하면 된다. 약사보다 국민이 무섭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박정태 논설위원 jt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