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시장’이 만능이라 생각하십니까?… 가치는 사라지고 가격만 남은 시대에 던지는 경고

입력 2011-06-23 17:24


경제학의 배신/리즈 파텔 /북돋움

물은 싸거나 공짜이고 다이아몬드는 비싸다. 그러나 인간에게 한 통의 물보다 다이아몬드가 귀중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물은 단 하루도 없어선 안 되지만 다이아몬드는 어디에 쓸모가 있는 물건인지 고개가 갸웃해 지는 물건이다.

“나는 모든 것의 가격을 안다. 하지만 어느 것의 가치도 모른다”는 오스카 와일드의 격언은 1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래서 유효하다.

‘경제학의 배신’(북돋움)은 가격은 있으되 가치는 사라진 시대를 통렬히 비판한다. ‘시장은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는 부제는 아직 시장만능의 환상에 사로잡힌 독자를 향한 경고다.

2008년 말 미국 의회에 불려나가 금융위기에 대한 책임을 추궁받은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의 답변. “모두가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죠. 아니 그래야만 합니다. 존재하기 위해서는 이데올로기가 필요합니다. 문제는 그것이 정확하냐 아니냐는 거지요. 결함을 발견했습니다. 그 결함이 얼마나 심각하고 오래갈지는 모르지만, 결함이 있다는 점에 저도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이 대답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사망선고나 마찬가지였다. 그린스펀은 다시 “세상의 작동 방식을 규정하는 결정적인 기능 구조라고 여겼던 모델에서 결함을 발견했다”고 부연했다.

라즈 파텔(사진)은 세계의 모순을 ‘안톤의 실명’에 은유하여 설명한다. ‘안톤-바빈스키 증후군’이라고도 알려진 이 병은 뇌졸중이나 외상에 의한 두뇌 손상을 겪은 사람들에게서 간혹 나타난다. 증상은 시력을 잃었으면서도 자신이 볼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 환자들은 굶주린 소녀가 집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말하거나, 있지도 않은 새로운 마을을 보았다고 주장한다. 이 병을 앓는 사람들은 몸에 상처가 생기거나 멍들면 보지 못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방심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시장주의라는 눈을 통해선 더 이상 세계의 사물을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환각을 보게 될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시장은 사회나 자연의 일부일 뿐 결코 그것들에 앞설 수 없다는 게 일관되게 펼쳐지는 파텔의 설명이다. 그러나 여전히 질서는 강한 자들을 위해서만 작동할 뿐이고, 시장은 관습적인 반성 후 예전처럼 굴러간다. 세계의 틀을 깰 수 있는 건 깨어있는 시민의 행동 뿐. 파텔은 슬로푸드 운동이나 멕시코 반정부 단체인 사파티스타식 민주주의를 예로 들며 대안을 제시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소비문화의 세례를 받은 세대에게 물질적 욕망의 괴물이 될 것인가 지속가능한 미래를 창조해낼 신시민이 될 것인가란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