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4·19… 세상이 요동쳐도 ‘우리 아기 잘도 큰다’

입력 2011-06-23 17:23


박정희 할머니의 행복한 육아일기 / 박정희 / 걷는책

한 가족의 행복한 일상을 엿보는 건 가슴 따뜻해지는 일이다. 2001년 출간됐던 박정희(89) 할머니 일기의 인기비결도 그런 것이다. 이번에 단정하게 정리돼 다시 나왔다. 1945년부터 60년대 중반까지 노트에 한자 한자 반듯하게 적어 내려간 4녀1남의 육아일기. 다섯 아이가 태어나서 6∼7살이 될 때까지 애 키우며 겪은 일이자 가족사다. 할머니가 육아일기를 쓰던 그 때. 시절은 얼마나 수상했던가. 다섯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는 사이 해방이 되고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휴전되고 4·19혁명이 일어났다. 세상이 그리 요동쳐도 아이는 태어나고 재롱을 부리고 엄마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법이다.

박정희 할머니는 육아일기에 딸이 좋아하던 동물 비스킷과 참외를, 아들을 기쁘게 한 강냉이 엿 고구마를 꿋꿋하게 그려 넣었다. 출산 날 방문했던 외할아버지 삼촌 등 식구 9명의 얼굴도 하나씩 기록했다. 첫딸이 태어난 평양 룡흥리 집 안팎에 풍성하게 피던 꽃, 해바라기 나팔꽃 양귀비꽃 과꽃 개나리도 그림으로 남겼다.

첫째 딸 명애의 육아일기(1945∼51년)에는 첫딸의 돌날 모습이 담겼다. 명애는 “머리도 깎을 것이 없을 만큼 솜털 머리”에 “울기만 잘해서” 엄마를 힘들게 한 아이였단다. 말은 그 무렵부터 했는데 “아바지 어뚱 오시오” “피양 가자”고 곧잘 했다. 내리 넷이나 딸을 낳은 맘고생도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는 ‘또 딸이야’ 하고 조금 섭섭해 했다. 노할아버지께 ‘저는 왜 딸만 낳을까요?’ 한즉, ‘응, 괜찮다. 너의 할머니를 닮은 게지’ 하셨다”고 적었다.

육아일기에는 바깥세상 이야기도 제법 들어있다. 박정희 할머니는 막내 제룡의 육아일기(1955∼60년)에 ‘우리나라와 세계의 형편’을 냉정하게 기록해뒀다. “6·25 동란을 겪고 휴전협정 아래 우선 싸움을 쉬고 있을 때였다(…)우리나라의 정치는 권력이니 빽이니 하는 말이 흔하게 쓰이는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당 시대였다. 어찌하면 권력을 잡아 보나 어찌하면 연줄을 붙드나가 큰 문젯거리고 대학 입학, 군대의 의무까지도 우물쭈물 뇌물로 해결이 되는 시절이었다.” 첫 애를 낳은 해는 해방이 된 1945년. 일기에는 해방 후 조선에 남은 일본인의 비참한 생활도 기록돼있다. “어제까지 ‘선생님’이던 사람이 거리를 치우는 인부가 되기도 했고 여자들은 로스키네 집에 식모살이를 다니며 불쌍한 상태였다.”

이영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