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염성덕] 호국에 목숨 바쳤는데

입력 2011-06-23 17:48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중략) 그렇다고 누구를 원망하거나 후회해 본 적은 더더욱 없다. 우리는 그때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리고 그렇게 했다. 내 살던 나라여! 내 젊음을 받아주오. 나 역시 이렇게 적을 막다 쓰러짐은 후배들의 아름다운 날을 위함이니 후회는 없다.”

북한군의 남침으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버린 무명의 학도병 전사자가 남긴 편지의 일부다. 사랑하는 가족과 사별하기 전, 전쟁터에서 구국을 위한 희생정신을 절제된 용어로 표현한 사연이 절절히 뼛속까지 스며든다.

‘후배들의 아름다운 날’을 위해 곳곳에서 산화한 이들의 유해를 찾아내 조국의 품에 안기게 할 책임이 후배들에게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후배들은 근 50년 동안 전사자들을 차디찬 산야에 방치한 채 잊고 지냈다. 육군은 2000년에야 6·25전쟁 50주년 기념사업으로 전사자 유해 발굴을 시작했다. 그것도 한시적으로.

유해발굴 뒤늦게 시작했지만

그 후 육군본부에 전사자 유해발굴과가 생겼고, 국가영구사업으로 결정됐으며, 2007년 1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창설됐다. 감식단 출범과 ‘6·25전사자 유해 발굴 등에 관한 법’ 제정은 유해 발굴 사업에 일대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해마다 대부분 100명 안팎에 그치던 국군 전사자 유해 발굴 수가 2007년 378구, 2008년 670구, 2009년 1137구, 지난해 1331구, 올해 6월 현재 665구로 급증했다. 지금까지 발굴된 유해는 모두 5363구.

하지만 아직도 전체 전사자의 96%인 12만7000여구 호국용사들이 이름 모를 산야에 묻혀 있고, 유가족들이 이들의 ‘귀환’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유해 발굴과 관련한 인프라는 구축돼 있지만 전사자 유가족의 고령화와 사망, 급격한 국토개발에 따른 유해 매장지 훼손 등 유해 발굴 사업을 가로막는 난관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루라도 빨리 전사자 유해를 유가족에게 찾아 주려면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협력이 필수적이다.

우선 유가족들이 유전자 검사를 위한 시료 채취에 적극 나서야 한다. 유품이 없는 유해를 찾을 경우 유전자를 비교할 유가족이 없으면 신원을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신원이 확인돼 국립대전현충원 등에 안장된 유해는 64구에 불과하고, 1만6040명의 유가족이 시료 채취에 응했을 뿐이다. 국방부는 전사자의 부모, 형제자매, 자녀는 물론 친가와 외가의 8촌까지 시료 채취에 응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전국 보건소 253곳과 군병원 18곳 가운데 가까운 데로 가서 채혈하거나 구강 분비물 채취 검사를 받기만 하면 된다.

전사자 유해 매장과 관련한 제보의 손길도 이어져야 한다. 6·25전쟁 당시 전사자를 매장했거나 매장 장면을 목격한 사람은 물론 영농 등산 건설공사 등을 통해 단서를 잡으면 감식단에 전화나 인터넷으로 제보하는 것이 국민의 책무다. 국방부는 발굴 유해 수에 따라 제보자에게 소정의 포상금을 주고 있다. 최근 탈북 대학생들의 국군 유해 발굴 현장을 언론에 공개한 것처럼 정부는 관련 사업을 적극 홍보할 책임이 있다. 또 발굴 예정 지역의 땅 주인은 대승적 차원에서 국가사업에 협조할 필요가 있다.

유족 恨 푸는데 최선 다해야

북한군과 중공군 등 적군 유해 870구를 발굴했지만 북한 등에 송환된 적은 없다. 모두 경기도 파주에 있는 적군묘지에 임시로 매장됐다. 정부는 해마다 주한 유엔군사령부를 통해 북한에 유해 송환을 제안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북한은 북한군 유해를 받아들이고, 북한에서 발굴된 한국군·유엔군 전사자 유해가 있다면 보내줘야 한다. 이것이 인도주의에 부합하는 길이다.

내년에는 많은 호국용사들이 조국과 유가족의 품에 안기기를 고대하며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보낸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