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오은영] 군대, 잘 갔다 와라
입력 2011-06-23 17:48
쓰나미가 따로 없다. 대학 2학년을 마친 아들 친구들이 줄줄이 군에 입대했다. 아들이 친구들 송별회 해주려고 휴학한 것 같단다. 친구 부모 대신 논산도 다녀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
아들 친구들은 헤어짐을 술로 풀지만 엄마들은 헤어짐을 눈물로 푼다고 한다. 엄마들 모임에 나갔더니 한 엄마 눈이 퉁퉁 부었다.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며칠째 훌쩍였단다. 밥 먹기 전에 휴대폰을 꺼내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며 중얼거린다. “밥 잘 먹으라고 경례하네, 착한 아들.” 휴대폰을 뺏어보니 군기 바짝 든 경례사진이 초기화면으로 올라와 있다. 군대를 보낸 지 1년 쯤 된 엄마가 한껏 여유를 부리며 놀린다. “아들 옷이 오면 또 눈물이 쏟아져. 하지만 6개월만 넘어 봐. 왜 자주 휴가 오냐고 할 걸.”
다른 엄마들은 위로의 말을 건넸다. 사서도 하는 고생 나라가 시켜주는 거야. 세상이 만만하지 않다는 거 배울 거야. 나도 질세라 한마디 보탠다. 공짜 극기 훈련 보냈다 생각해. 그런데 마음 한쪽이 찜찜하다. 내무반에서 쓰러져 죽고, 총기 오발 사고로 죽고, 뇌수막염 걸린 훈련병이 죽는 등. 한순간에 꺾인 꽃봉오리들을 떠올리며 내 위로가 망언이 될까 두렵다.
뇌수막염, 아들이 고3때 걸려 그놈을 잘 안다. 아들은 밤새 고열과 두통으로 악을 써대며 방바닥을 굴렀다. 결국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그 고통을 어떤 심정으로 죽을 때까지 참았을까? 처치만 빠르면 죽을병은 아닌데…. 그 청년 엄마의 애간장이 내 애간장인 듯 쓰리고 아팠다. 이런 사고의 불안 속에서 2년을 보내고 나오면 아들 친구들도 아버지들처럼 소리 높이리라. 앞으로는 술자리나 여자들 앞에서 승전가처럼 무용담을 외치리라.
뭐 눈에는 뭐밖에 안 보이나 보다. 그날 저녁 인터넷을 통해 뉴스를 검색을 하는데 군대 관련 기사만 보였다. 그러다 우연히 양심적 병역거부를 외치며 교도소에 수감된 학생 기사를 읽었다. 그 학생은 헌법이 보장한 양심의 자유를 주장했으나 그에게 적용된 것은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는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을 받는다’는 병역법이었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은 대부분 종교적 이유나 평화주의자의 가치관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만약 대체복무제도가 활성화된다면 이런 안쓰러운 일은 없을 텐데. 한때 정부도 36개월 동안 한센병원이나 결핵병원 등에서 근무하는 방법을 발표했었다.
그러나 2008년 말 무기한 보류를 발표했다. 징병제인 우리나라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자는 범죄자다. 그들은 왜 불이익을 감내하면서 병역거부를 하는 걸까. 개인의 신념도 존중받아야 하겠지만 분단된 조국의 현실에서 공동체의 가치 또한 중요하다는 측면에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 없다.
국가가 신체 건강함을 인정한 내 아들도 군에 갈 시기를 저울질한다. 곧 나도 눈물엄마 대열에 서겠지. 그래도 입영거부를 할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이 다행이다.
오은영 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