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 PIFF 명예위원장의 ‘그래도 못다한 이야기’… “이젠 내 영화 찍어야죠 사랑에 대하여”

입력 2011-06-23 18:05


키 163㎝에 고희(古稀)를 훌쩍 넘긴 이 ‘거인’은 지치는 법을 모르는 게 분명하다.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새 프로젝트를 이야기했다. 1월부터 지난주까지 21회에 걸쳐 본보 주말섹션 And에서 부산영화제 15년을 회고하는 동안 또 다른 일을 벌이고 있었다. 그는 1937년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나 공무원과 영화인, 두 인생을 살았다. 문화부 차관을 지냈고, 문예진흥원 예술의전당 현대미술관 독립기념관을 일궜으며, 부산영화제를 탄생시켜 세계 영화판에 우뚝 세웠다.

스물한 번의 회고에도 못다 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And 기자 6명이 20일 김 위원장을 만났다. 서울 인사동 남도음식점 ‘여자만(汝自灣)’에서 그는 3시간30분 동안 화장실도 가지 않고 높낮이 없는 일정한 저음으로 ‘집단 인터뷰’에 답했다. 전남 여수와 고흥 사이의 만 이름에서 따온 여자만은 영화감독 이미례씨가 운영한다. 입구에 “남자 분도 들어오셔도 됩니다!”라고 써 있다.

-어떻게 지내시나요.

“7월에 대관령국제음악축제가 있어서 일이 많아요.(그는 지난 1월부터 강원문화재단 이사장직도 맡고 있다.) 단국대 프로젝트도 맡았어요. 영화 전문 대학원을 개설하려고 해요. 연출 프로듀싱 스토리텔링 영상기술, 네 분야를 통합해 가르치는 거죠. 예를 들면 CG(컴퓨터그래픽)나 3D 기술을 익히고 그걸 바탕으로 연출 기획 제작을 하는 방식이에요. 7월 교육부에 인가신청을 하고, 실사 거쳐서 9월에 인가 나오면 내년부터 강의를 시작할 거예요. 학생은 한 학기에 13명 정도만 받을 예정입니다.”

-새 대학원을 통째로 만드는 대형 프로젝트군요. 등록금이 비싸겠네요.

“기업의 협력이 필요해요. 물론 학교에서 장학금도 내야 하고. 국내외에서 최고 교수진을 확보하는 게 관건이에요. 에미상 받은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의 스토리텔링 전공 교수들, 할리우드의 스페셜리스트들, LA 채프먼대학 닷지칼리지 교수진과 MOU(양해각서)를 맺어서 교수·학생 교환 프로그램을 추진하려고 해요. 칸영화제 갔을 때 그쪽 학장과 대체로 합의했습니다. 국내에서도 심재명 오정완 김미희 이유진씨 같은 프로듀서, 윤제균 강우석 곽경택 이명세 감독과 접촉하고 있고요.”

-영화학과가 있는 대학들이 긴장하겠는데요.

“그래서 카이스트의 문화기술대학원 창설했던 원강연 교수님이나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인 이용관 중앙대 교수도 자문위원으로 위촉해요. 경험을 들려달라는 거고 또 서로 경쟁하면 서로 발전하니까요. 한 2년만 기틀 잡아 놓고, 전 빠져야죠.”

6개월간 그의 회고록을 연재하며 가장 궁금했던 것은 어떻게 15년 전에 있었던 일을 몇 월, 며칠, 몇 시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가였다. 김 위원장은 양복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보여줬다. 국내 한 회사가 만든 5000원짜리 다이어리를 펼치자 일주일 단위로 시간대별 일정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특히 중요한 약속은 붉은색 펜으로 썼다. 촘촘한 회고록은 메모의 힘이었다.

-다이어리를 보니 여전히 강행군이시네요. 체력은 어떻게 유지하세요.

“지난 5월에 처조카 결혼 때문에 미국 뉴욕에 갔어요. 5월 10일 15시간 비행해서 인천공항에 새벽 3시30분 도착했고 집에 가니까 오전 5시. 옷 갈아입고, 짐을 새로 싸서 오후 1시30분 인천공항에서 다시 비행기 타고 영국 런던을 거쳐 프랑스 칸영화제로 갔죠. 그날 오는 데 15시간, 가는 데 다시 15시간. 다 이코노미석으로. 그래도 뭐 괜찮더라고요. 시차요? 그냥 비행기 안에서 자면 되죠. 허허.”

-혹시 건강을 위해 드시는 게 있나요. 사모님께서 챙겨주시는.(김 위원장 부인은 약사다.)

“에이 전혀. (집사람이) 친구들에게는 영양제 같은 걸 줘도 저는 안 줬어요. 술 많이 마실 때는 제가 약까지 먹으면 술을 더 먹을 테니까 안 줬고. 임상약학 전공했으니까 보약, 이런 건 절대 금물이고. 그러니까 먹는 게 없죠. 영양제 빼고, 보약 빼고 하면.”

그는 2006년 1월 1일 술을 끊었다. 그 뒤로는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남들 술 마실 때 냉수를 같은 양만큼 들이킨다. 예나 지금이나 매일 새벽 4시30분이면 일어나 1시간씩 운동을 하고, 일요일엔 테니스를 친다.

-지구상의 거의 모든 영화제에 가보셨는데, 어떤 영화제가 가장 부럽던가요.

“규모나 내용은 칸이나 베를린이죠. 그런데 영화제 자체가 즐겁고 재미있는 건 좀 작은 데죠. 프랑스 같으면 도빌아시아영화제. 극장을 세 개밖에 안 쓰니까. 한 극장에만 있어도 못 보던 일본 중국 홍콩 심지어 한국 영화까지 다 봐요. 도시가 가족 같은 분위기인 데다 경치도 좋고.

이탈리아 우디네극동영화제는 음식이 좋아요. 하하. 와인도 훌륭하고요. 한국 감독들이 초청받으면 무조건 갑니다. 제가 가기 전에는 배우 강수연이 가서 세계에서 모인 게스트들을 완전히 술로 제패했고, 전 강수연 후임으로 가서 또 제패를, 술로 했었죠.

섬에서 하는 데도 좋아요. 스페인 라스팔마스라든가 남태평양 타히티영화제. 라스팔마스는 부산 교포들이 많고, 타히티는 다큐멘터리영화제인데 고갱이 마지막 살던 데니까. 제가 미술도 좋아해요.”

그는 서울에 살지만, 경기도 광주의 작은 마을에도 집이 한 채 있다. 2층집인데 여기엔 그가 모은 트럭 5대 분량의 책만 있다. 대부분 영화와 미술 서적이다.

“아래층 한쪽 벽 전체를 세계 영화제 카탈로그로 채웠죠. 반대쪽 벽은 주로 현대미술 도록을 정리해 놨어요. 영화제 다니면서 미술관도 간 거죠. 가면 반드시 도록을 샀어요. 2층에 올라가면 방 두 개 중에 한쪽 방은 영화 매스커뮤니케이션 연설문 일반문화 책이고, 다른 방은 고미술 책이에요. 현관 양쪽에는 미처 정리 못한 헌책들이 서 있고, 다락에도 정리 못한 책들이 있죠. 60년대 서예로 국선에 나간 적도 있는데 이젠 유화를 좀 그려보고 싶어요. 연설문 책이 왜 있냐고요? 제가 공직에 있을 때 주로 장관들의 고스트 라이터(유령작가·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만든 같은 이름의 영화가 지난해 개봉됐다)였어요.”

-참았던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그동안 혹시 마음이 끌렸던 여배우가 있었나요. 아니면 위원장님을 흠모했던 여배우는.

“하하. 전혀 없습니다. 제일 오래 사귄 배우야 강수연이죠. 신혜수는 88년 몬트리올영화제에 같이 갔고요. 신혜수 결혼할 때 제가 주례도 섰어요.”

-지난해 은퇴 파티 때 프랑스 여배우 쥘리에트 비노슈와 춤도 추셨는데.

“쥘리에트는 중국에 애인이 있어요. 하하.”

올 부산국제영화제는 10월 6일부터 14일까지 9일간 열린다. 제16회. 70개국 300여편 영화가 상영된다. 9월에는 김 위원장이 고대해온 부산영화제 전용관이자 아시아 최대 복합문화공간 ‘두레라움’이 해운대 센텀시티에 완공된다. 전용관이 생기면서 이제 부산영화제는 매년 ‘10월 첫째 목요일’이라는 고정된 개막일을 갖게 됐다. 그는 살짝 뒤로 물러선 채 부산영화제 ‘2막’을 지켜보고 있다.

-아시아 최고 영화제의 위상을 지켜가야 할 텐데요.

“중국이 올해 베이징영화제를 창설했어요. 자기 나라 안에서도 상하이영화제를 앞지르자고 하면서 세계 많은 영화인을 초청했죠. 저와 이용관 집행위원장을 동시에 초청했는데, 가만히 보니 이용관 위원장이 중국에 많은 노력과 공을 들였고, 제가 같이 가면 이 위원장의 빛이 좀 덜 날 것 같아서 마지막에 가지 않겠다고 했어요.

중국의 영화시장이 큰 건 사실이에요. 칸영화제 때 보고서를 보니까 2008년부터 2011년까지 평균 32% 성장했더군요. 그런데 수입쿼터를 제한하고 있어서 한국영화는 2편 이상 틀기 어려워요. 그걸 좀 풀어 달라고 만날 때마다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은 결점이 있어요. 검열이죠. 정부에서 아무리 지원해도 검열이 있으면 영화제 성장에 큰 제약이 돼요.

제일 중요한 건 영화거든요. 부산도 그래요. 선정된 영화들이 별로 볼 게 없더라, 그러면 당장 부산에 오는 외국인이 줄겠죠. 또 월드 프리미어, 세계 최초로 상영하는 영화가 많아야 해요. 뭐 저보다 더 유능한 분들이 계시니까 잘 하실 겁니다. 허허.”

자신의 인생을 영화에 비유한다면 무슨 영화를 꼽겠는지 물었다. “그냥 뭐… 영화를 많이 안 봐서.”(그는 88년 영화진흥공사 사장이 된 뒤로 해마다 100∼200편의 영화를 23년째 봐 왔다.) 15년간 그토록 강행군을 해온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것이냐는 질문도 있었다. “뭐 그냥….”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질문마다 그는 입버릇처럼 “그냥 뭐…” “뭐 그냥…” 하면서 적당히 넘어갔다.

-‘내 인생의 영화’를 꼽는다면요.

“그 질문이 가장 대답하기 곤란해요. 허허. 한국영화 중에는 임권택 감독의 ‘만다라’가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고, 외국영화는 ‘인생은 아름다워’나 ‘피아니스트’, 그리고 ‘샤인’도 아주 좋았어요.”

-직접 영화 만들어볼 계획은 없으신가요.

“해보려고 하는데, 단국대 프로젝트가 만만치 않아가지고요.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의) 주제는 사랑이에요. 세계적 감독들이 사랑을 어떻게 해석했고, 자기 영화에서 사랑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왕자웨이든 허우샤오시엔이든 저랑 가까우니까 그들을 심층 인터뷰하는 장면을 담고, 거기에 그들의 작품을 붙여가면서 사랑을 얘기하면 그래도 딱딱하지 않은 영화 한 편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 사람들 본인의 사랑 얘기와 그들이 찍었던 장면, 뭐 이런 것들로.”

이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아주 담담한, 그리고 무척 따뜻한 영화일 듯하다. 이날 인터뷰 자리가 그랬다.

정리=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