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교회의 역사

입력 2011-06-23 17:29


독일 종교개혁의 전개과정(3)

루터의 신학은 신앙의인화(justification by faith)이다. 먼저, ‘오직 은총으로만(sola gratia)’이다. 루터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본문이 로마서 1장 17절이다. 그 구절 전반부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義)는 능동적인 의, 곧 심판하시고 정죄하시고 저주하시는 것으로만 생각하였다. 그 무서운 심판 앞에 죄인인 자신의 모습에 크게 절망, 죽음에 이르는 병에 빠지게 되었다. 인간은 환자처럼 본성이 타락하여 원죄로 말미암아 구원의 가능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타락한 본성은 노예의지 상태에 빠져 있으므로 구원에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묵상하고 또 묵상하는 가운데 그 뜻이 전혀 다른 것을 발견하였다. 죄인을 무서운 공포와 절망에 빠뜨린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해방되는 순간을 경험한 것이다. 능동적인 의가 아니라 수동적인 의, 곧 무조건 용서하시고 받아 주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의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루터의 서재가 탑에 있었는데 이것을 ‘탑의 경험(Turmerlebnis)’이라고도 부른다.

둘째, ‘오직 믿음으로만(sola fide)’이다. 인간의 능동적인 선행과 노력이 아무런 효과가 없고, 중세 스콜라주의적인 사변도 하나님의 의와 사랑을 온전히 발견할 수 없으며, 오직 십자가의 은총을 믿을 때만 구원이 가능함을 강조한다. 그리고 전에는 그 믿음을 지적으로 인정하는 믿음으로 생각하였는데, 이제는 전 존재를 걸고 내맡기는 신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신뢰는 인간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짐을 발견하게 되었다(엡 2:8). 즉 성령이 믿음을 우리 속에서 창조하실 때에 믿음이 일어남을 주장한다. 오직 믿음을 너무나 강조한 나머지 그가 희랍어 신약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할 때 하반절(롬 1:17)에 ‘오직 믿음’을 집어넣었다. 그는 중세기사의 옷을 입고 이름까지 바꾸고 수염도 깎지 않고 바르트부르크성 깊은 곳에 있는 방에서 성경을 번역하였는데 희랍어 원본에는 그냥 ‘믿음’이라고만 되어 있는 것을 루터가 ‘오직 믿음’이라고 추가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말 개역에는 ‘오직 믿음’이라고 되어 있는데, 보다 희랍어 원본에 충실하게 번역된 표준새번역에는 그냥 ‘믿음’이라고 되어 있다.

셋째, ‘오직 말씀으로만(sola scriptura)’이다. 오직 믿음은 말씀을 들을 때에 일어난다. 중세 스콜라주의의 선행과 중세 신비주의의 체험을 비판한다. 주관적 내면적 체험이 아니라 우리 밖에서 객관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말씀으로 믿음이 일어남을 강조한다. 은총은 말씀 안에서 말씀을 통하여 말씀과 함께 우리에게 다가온다. 말씀 이외의 신비적 체험, 곧 꿈과 환상을 통하여 오지 않는다고 본다.

성령의 역사는 말씀을 통하여 일어난다고 이해한다. 그가 바르트부르크성에 갇혀 있는 동안 비텐베르크 소동이 일어났다. 그것은 츠비카우 선지자들이 중심이 되어 토마스 뮌처와 칼스타트 등 루터의 동료들도 동참하여 신비적 환상과 꿈을 강조하는 신비주의 운동이 일어난 소동을 말한다. 루터는 다시 비텐베르크를 그의 말씀신학으로 돌이키기 위해서 여덟 번의 설교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라이프치히 논쟁에서 루터는 교회의 최고 권위는 교황의 말씀이나 교회의 전통이 아니라 오직 성경이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그래서 그는 감히 로마 교황의 무오설에 항거하여 교황도 오류를 범할 수 있음을 지적하게 되었다.

김홍기 감리교신학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