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런던 질투한 베를린에서 세계大戰을 만나다
입력 2011-06-23 17:22
유럽사 산책1,2/헤이르트 마크/옥당
여행기와 사실(史實), 감상 몇 마디를 보태면 역사기행이 되는 줄 알았다. 지금까지 소비해온 문화유산답사기들이 대략 그랬으니까. 이 책 ‘유럽사 산책’을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네덜란드 저널리스트 헤이르트 마크가 쓴 ‘유럽사 산책’은 ‘역사 절반 기행 절반’이라는 역사기행서의 틀을 가뿐하게 뛰어넘었다. 역사서, 논픽션, 인터뷰, 르포에 넘치지 않을 만큼의 여행기가 섞인 책 속에서 과거는 현재와 절묘하게 만난다. 저자는 밀레니엄을 앞둔 1999년 1년간 런던 파리 베를린 도른 스톡홀름 헬싱키 등 유럽 대륙 20여개국 도시를 여행했다. 이 여행 일정에 제1·2차 세계대전, 나치즘, 스페인 내전 등 20세기 굵직한 사건을 얹어 유럽사를 사건별로, 연대별로 재구성했다.
그런 점에서 이 책 역시 역사(과거)와 기행(현재)이 두 축인 건 맞다. 다만 과거와 현재 사이를 기계적으로 오가는 대신 책은 과거가 현재에 남긴 흔적에 주목한다. 저자는 “20세기를 마무리 짓는 유럽 대륙의 모습을 살피는 최종점검이자 20세기 역사가 남겨놓은 흔적을 따라가는 12개월간의 역사여행”이라고 요약했다. 그의 말대로 책이 쓰인 1999년(출간은 2004년)의 유럽과 그런 유럽을 낳은 20세기는 100년의 유럽사라는 하나의 이야기로 녹아들었다.
이를테면 독일 베를린 기행은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 따라잡기에 열을 올렸던 20세기 초 빌헬름 2세(1859∼1941)의 베를린 거리를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런던, 파리와 달리 베를린은 신생도시였다. 독일이란 정체성도 모호했다. 그들은 스스로를 독일인이 아니라 작센인, 프로이센인이라고 생각했다. 역사적 공백과 정체성 불안. 빌헬름 2세는 독일이 직면한 이 두 가지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고 싶었다. 욕망은 베를린 돔 성당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저자는 바티칸 산피에트로대성당, 런던 세인트폴대성당, 파리 노트르담성당을 뒤섞은 돔 성당에서 “르네상스 시대와 18세기를 단숨에 만회하려는 (빌헬름 2세의) 성급함”을 읽었다. 일반 주택에서도 흔적은 발견됐다. 베를린 거리 곳곳에는 지금도 파리, 런던 등지에서 좀도둑질한 건축 양식들이 널려있다. 20세기 초 독일을 휩쓴 조급함과 질투는 유럽을 어디로 이끌었을까. 저자의 안내를 받아 베를린 거리를 걷다보면, 어느새 제1,2차 세계대전이라는 비극과 만나게 된다.
러시아 혁명은 1917년 4월 레닌의 귀향 행로를 따라가며 살폈다. 스위스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레닌은 스위스, 독일, 스웨덴, 핀란드를 거쳐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간다. 저자는 레닌의 여정을 되밟아가는 길에 나치 독일과 레닌의 결탁, 러시아와 핀란드의 불편했던 관계, 스웨덴 사회민주주의 뿌리와 조우한다. 레닌의 혁명을 통해 20세기의 이념투쟁이 아니라 동·서 유럽과 북유럽, 러시아가 교차하는 유럽의 경계를 살핀 것이다.
독일, 북유럽, 러시아 사이에 끼여 부침을 거듭한 발트3국의 20세기는 리투아니아 수도 빌니우스의 한 정부 건물에서 읽었다. 20세기를 러시아제국 재판소로 출발한 이 건물은 독일 재판소로, 볼셰비키 혁명 재판소로, 다시 게슈타포 사무실과 리투아니아 특공대 건물을 거쳐 오늘날에는 박물관으로 변신했다. 주인 따라 건물의 얼굴도 독수리(제정 러시아 제국 깃발)와 나치 문양(나치 독일 국기), 망치와 낫(소비에트 연방 국기)으로 바뀌었다. 과거는 오늘에도 남아있었다. 감방이자 고문실로 활용됐던 지하실에서는 옛 수감자도 만났다. 노인은 “정말 무서웠다”며 몸서리를 쳤다. 북유럽과 독일, 러시아풍으로 제각각 발전해가는 발트3국의 현재 역시 조각조각 난 역사의 상처였다.
1400쪽 분량의 책이 비교적 쉽게 읽히는 건 논픽션 기법 덕인 듯하다. 군데군데 나오는 이야기체 구성 때문에 역사학자들은 학술적 평가를 망설였다지만, 제1차 세계대전을 촉발시킨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태자 부부의 사라예보 암살 사건을 당시 일간신문 보도로 되짚는 대목쯤 가면 매력을 알게 된다.
‘유럽사 산책’을 읽으며, 한권의 책은 그 사회가 가진 지적 역량의 총화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학계 수준을 말하는 게 아니다. 개인이 받은 교육, 평생 읽은 책, 만난 사람들, 지인과 나눈 대화, 대중매체를 오간 의견과 정보가 내면에 쌓일 때 한 명의 지식인 혹은 책 한권이 탄생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직 이런 수준의 저작을 갖지 못했다고 서둘러 실망할 일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한문과 한글, 봉건과 근대 사이에 벼락같은 단절이 있었다. 필요한 건 그 단절을 메울 시간일 것이다. 그렇게 위로해봤다. 강주헌 옮김.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