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교회 판도가 바뀌고 있다-(上) 교회와 정부의 갈등] 대도시 지식인 그룹, 교회 리더로 급성장

입력 2011-06-22 20:23


중국교회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과거의 수세적 입장에서 탈피, 정부에 대해 ‘할 말을 한다’는 공세적 입장으로 변하고 있다. 기업인, 교수, 예술인, 법조인 등 전문가 집단의 교회 출석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3회에 걸쳐 신흥도시 가정교회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중국교회의 현실과 향후 과제 등에 대해 알아보았다.

“올 것이 왔다. 정부와의 지난한 샅바싸움이 시작됐다.”

지난 4월 10일부터 중국 베이징 서우왕(守望)교회가 공안(경찰)의 원천봉쇄로 인해 야외예배를 진행하지 못하게 되자 중국선교 전문가들의 공통된 반응이었다. 중국 정부의 서우왕교회에 대한 압력은 집요하기까지 하다. 지난 19일까지 11주째 주일예배가 파행을 겪고 있다. 김천명 담임목사 등 주요 리더들은 반(半)연금 상태다. 예배에 참석하려던 성도들은 체포된 뒤 회유 과정을 거쳐 방면되고 있다. 결국 서우왕교회의 목회자이자 일본 유학파 쑹쥔(宋軍) 박사를 비롯해 일부 그룹이 이탈했다. 정부는 삼자교회 인사들까지 이용해 이 교회 리더들과 개별적으로 접촉,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교회와 정부의 정면충돌 서막(?)=중국은 정부 공인 삼자교회에는 지도와 감독을, 제도권 밖 가정교회에는 탄압과 단속이라는 ‘두 날개 전법’을 구사해왔다. 이 전략은 1980∼90년대 어느 정도 성과를 내다가 2000년대 중반 한계에 도달했다. 베이징 상하이 청두 등지에서 새로운 교회 리더십이 부상하고 ‘세(勢)’를 형성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2008년 이래 정부 산하기관인 국무원 발전연구센터를 비롯해 중국사회과학원 세계종교연구소, 베이징대 중국종교 및 사회연구센터 등을 중심으로 가정교회 합법화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이는 대외적으로 가정교회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던 정부의 입장이 변화되는 게 아니냐는 추측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제3회 로잔대회의 참석 여부를 놓고 도시 가정교회 지도자들이 속속 출국금지 당하면서 정부와 교회 간 갈등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또 다른 희생양으로서 특정 교회에 대한 강도 높은 탄압의 가능성이 제기됐던 것.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서우왕교회가 정부의 타깃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김천명 목사는 2003년부터 교회의 전면 공개화와 합법화를 추진해왔기 때문이다. 그는 삼자회에 소속되는 걸 거부하고 정부의 허가는 받되 독립 교회로 존재하길 원했다. 이는 정부의 종교정책과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가 추진한 교회 등록 신청은 묵살됐다. 대학생 성경공부로 시작된 이 교회는 중국판 ‘메가 처치’가 됐지만 예배 장소로 빌려 쓰던 오피스 빌딩에서 쫓겨나야만 했다. 새롭게 건물을 빌리거나 사들이려고 할 때마다 교묘하게 방해를 받았다. 심지어 2700만 위안(약 45억원)을 마련, 예배용 자체 건물을 구입하려 했지만 정부의 입김으로 좌절됐다. 성도들은 직장에서 해고 위협에 시달리기도 했다.

차이나네트워크연구소 왕이 연구원은 “그동안 공안은 서우왕교회를 비롯해 베이징 시안(錫安)교회, 상하이 완방(萬邦)선교교회 등 엘리트 중심의 도시교회 출현과 성장세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면서 “양측 대립은 장기간 이어질 공산이 크다”고 전망했다.

◇시험대에 오르는 도시 가정교회 리더들=과거 가정교회는 워치만리 왕밍다오(王明道) 린센가오(林獻羔) 셰모산(謝模善) 리톈언(李天恩) 등 걸출한 인물을 배출했다. 이들은 정부와 타협하지 않고 믿음의 순수성을 지킨 탓에 오랜 기간 감옥에서 지내야 했고 출옥 후에는 가정교회의 대표 아이콘이 됐다. 수많은 후배 목회자들은 이들의 불퇴전 신앙을 계승, 발전시켜왔다.

그중 김천명 김명일 최권 등 40대 조선족 목회자의 활약상이 두드러졌다. 두 명의 김 목사는 각각 칭화대 베이징대의 1986학번 출신이다. 김천명 목사는 대학 졸업 후 연구소에서 일하면서 석사과정을 이수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목회자의 길에 들어섰다. 93년 칭화대 서문에서 10여m 떨어진 곳에 교회를 개척한 그는 2002년 셰모산 목사로부터 목사안수를 받았다. 김명일 목사는 중국 내 대표적인 삼자신학교인 옌징신학교를 졸업, 교수 사역을 하다가 2007년 미국 풀러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베이징 시안교회를 개척, 단기간에 성도 600여명으로 성장시켜 주목받아왔다. 그는 여러 차례 공안과 담판을 갖고 공개적으로 교회를 이끌어왔다. 아직까지 강도 높은 탄압을 받고 있지 않지만 언제든지 어려움을 겪을 개연성이 있다. 2009년 11월에는 최권 목사가 담임하는 상하이완방선교교회가 폐쇄되기도 했다. 성도 1200여명에 달하던 이 교회는 결국 11개 작은 교회로 나뉘어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