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당신은 용서하며 살고 있습니까… 6·25 전쟁 배경 신앙인의 고민 그린 영화 ‘한걸음’
입력 2011-06-22 17:55
“네 원수를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기독교인에게 금언(金言)과 같은 이 성경 말씀에 ‘아멘’ 하기는 쉽지만 실천하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영화 ‘한걸음(포스터)’은 이 기독교인의 고민을 6·25 전쟁의 상처를 통해 여실히 드러낸다. 최근 서울 서초동 산정현교회 소양홀에서 기자들을 위한 ‘한걸음’ 시사회가 열렸다.
6·25 발발 3개월 전, 남녘 어느 시골마을에 빨치산 처녀 미정이 강물에 떠밀려온다. 미정은 교회 전도사 근영의 정성어린 간호에 힘입어 회복된다. 성경에 관심을 갖는 척하던 미정은 마을 정보를 빼내 몰래 빨치산 동료들에게 알려준다. 6·25 전쟁과 함께 공산군이 들이닥치면서 평화롭던 마을은 순식간에 전쟁의 폭풍에 휩싸인다. 근영의 부모는 하루아침에 ‘지주’라는 누명을 쓴 채 비참하게 죽어간다. 무사히 탈출했던 근영은 국군에 가담해 부모의 원수를 갚는 데 앞장선다. 하지만 미정을 발견한 근영은 차마 죽이지 못한다. “다시 한번 눈에 띄면 죽여버리겠다”는 엄포만 놓은 채 살려준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가난한 노(老) 목사 근영에게 손녀 정인의 치료비를 대신 지불한 후원자가 나타난다. 근영은 병원장을 설득해 그 후원자가 미정이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수소문 끝에 미정의 숙소를 찾았지만 요양원 직원이 미정을 대신해 노 목사를 맞는다. 그 직원은 “할머니(미정)는 며칠 전 돌아가셨다”며 “유언대로 모든 재산은 사회에 환원했다”는 설명을 내놓는다. 미정의 마지막 유품인 손때 묻은 성경도 함께. 수십 년 전 시골마을에서 미정을 돌보며 근영이 건네준 선물이다.
영화는 수십 년 동안 ‘원수’를 용서하지 못했던 근영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인에게 용서가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말해준다. 하지만 6·25를 거쳤어도 용서의 삶을 살다 간 믿음의 선배들은 얼마든지 있다. 23명의 친지를 잃었지만 원수를 용서한 성결교의 김용은 목사도 그 중 한 사람이다. ‘한걸음’을 제작한 권순도 감독은 “한국 교회 안에 묻혀 있는 수많은 무명 기독교인들이 보여준 용서의 삶이 영화의 모티브가 됐다”고 밝혔다.
권 감독의 싸이월드 클럽 ‘주님의 영화 제작팀’엔 관람객들의 호평도 이어지고 있다. ‘백억조’는 “원수를 용서하고 감싸주는 주인공을 보며 참 신앙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었다”고 했다. ‘윤충수’는 “서로의 동족에게 총부리를 겨누던 것이 몇 백 년 전의 일이 아니라 고작 60년 전의 일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해준 영화”라고 적었다.
영화엔 미스코리아 출신 탤런트 승효빈이 주연을 맡았고, 탤런트 권오중 최범호 최성웅이 출연했다. 권 감독은 “이번 영화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전쟁영화를 만들어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영화제목 ‘한걸음’은 용서의 큰 걸음이라는 의미와 감독의 강한 의지를 동시에 담고 있다.
‘한걸음’은 25일 산정현교회에서 한 차례 더 시사회를 가진 뒤 교회 순회 상영을 시작한다. 영화 상영과 관련한 문의는 070-8880-5167로 하면 된다.
김성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