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작가 박범신… “자본주의 폭력성 그렸죠”

입력 2011-06-22 17:52


“이 소설을 쓸 때 실제로 손바닥 한 가운데에 동전만한 굳은살이 박이더군요. 비록 노트북으로 썼다지만 손에 말굽이 생긴 것 같은 기시감이 느껴졌지요.”

신작 장편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문예중앙)를 낸 소설가 박범신(65)씨는 22일 열린 간담회에서 “우리가 깔고 앉은 (자본주의라는) 장판 밑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려주고 싶었다”며 “안락하고 화려하고 번들한 자본주의는 사실 겉구조에 불과할 뿐, 더 위험한 것이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걸 폭력성이라는 코드를 통해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수감 생활을 마치고 출옥해 노숙자로 떠돌던 ‘나’와 원룸빌딩 샹그리라 집주인인 이사장을 축으로 전개되는 소설의 제목은 오래 전 작가가 읽었던 미국 시인의 시 구절에서 따왔다. “언제부터인가 내 손바닥 안쪽에 말굽이 생겨난 것이다. 정말로 쇠로 된 말굽이다.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나무나 기둥, 벽돌이나 콘크리트 벽, 바위, 철판, 암튼 단단한 것만 보면 손바닥으로 반복해 때리는 버릇을 갖고 있다. 오래된 버릇이다.”(프롤로그-17쪽)

영화 ‘황해’에서 배우 김윤석이 뜯어먹던 개뼈다귀를 휘두르며 상대방을 제압하는 장면이 있었다면 이 소설은 아예 손이 말굽으로 변하는 한 사내의 하드고어적 생애를 그린다.

“재벌 2세가 한 대에 300만원씩 값을 매겨 야구방망이로 2000만원어치를 때리는 세상, 재벌 1세가 매 맞고 들어온 아들을 보고 폭력배를 동원해 앙갚음을 하는 세태를 보면서 소설을 착상했지요. 우리 사회의 위험 요소에 대한 무감각을 깨우고 싶었다고나 할까요.”

올 여름학기를 끝으로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교수직에서 정년퇴임하는 그가 새 출발을 앞두고 지난 6개월 동안 치열하게 매달린 소설은 작가생활 39년째인 그의 39번째 소설이기도 하다. 1년에 1권꼴로 장편을 낸 셈인데 근래 1년6개월 동안에도 이 소설을 포함해 ‘은교’ ‘비즈니스’ 등 3권의 장편을 낼 만큼 충만한 작가적 에너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문장은 반백의 나이임에도 날이 서 있다. “젊었을 때는 문장의 날이 서 있게 마련인데 그게 늙으면 둔해집니다. 적당히 둔해져야 말년이 복되다는데 나는 아직도 날을 세우고 있으니 분명 현역 작가인 것이죠. 돌이켜보면 39편의 장편을 썼음에도 1권의 소설을 쓴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소설과 연애하듯 39년의 세월이 흘렀지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한히 파생되는 폭력의 고리들을 마술적 리얼리즘 기법으로 파헤치고 있는 소설의 압권은 폭력의 도구로 사용된 말굽의 고백에 있다. “나의 주인은 마지막까지 우주 바깥, 아주 먼 곳에서 유래한 ‘탄생 이전의 슬픔’이라는 감정만은 남겨 지니고 있었지만, 나에겐 탄생 이전과 이후가 다르지 않기 때문에 그런 감정조차 전무하다.”(465쪽)

오욕칠정을 끊지 않는 한 인간 내부의 폭력성을 제거할 수 없다는 말굽의 고백과 관련, 그는 “결국 폭력성이란 생의 유한성의 문제에 기인한다”면서 “젊었을 때는 느끼지 못했지만 결국은 생의 유한성이 사회 구조를 다 지배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올 가을쯤 고향인 충남 논산에 새 거처를 마련한 뒤 짭짤하고 곰삭은 젓갈에 대한 소설을 써볼 생각이라는 그는 “현재 맡고 있는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직도 곧 내려놓고 강력한 표창을 든 청년작가로 진군해볼 작정”이라고 말했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