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교회길] (17) 충남 부여 오량교회

입력 2011-06-22 19:14


신앙의 꽃 활짝 핀 ‘113년 복음 동산’

19일 충남 부여군 양화면 오량2리 오량교회 동산에 올라서니 멀리 금강이 보인다. 동산 바로 앞엔 오성들이 펼쳐져 있다. 취락이 형성된 곳의 산은 야트막하다. 표고 10m 내외에 집들이 들어섰고 20m쯤 되는 동산 언덕엔 113년 전통의 교회가 자리했다.

마을과 금강 사이엔 29번 국도가 들을 가로지르는데 1894년 동학농민군이 공주 우금치 전투를 치르기 위해 북상하던 역사길이다. 동학군은 이때 관군과 일본 연합군에 크게 패했다. 이후 일제의 조선 땅 지배에 대한 야욕이 노골화된다.

오량교회를 중심으로 한 취락의 성쇠는 ‘근대 개신교사’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인문지리학적 요소를 담고 있다.

군산항이 개항된 것은 1898년. 오량교회의 설립과 같은 해다. 일제는 금강하구 군산항을 삼남지방 쌀 수탈을 목적으로 규모를 키워갔다. 개항에 앞서 캐나다침례교, 미국 남장로교회 등이 군산을 근거지로 수운을 이용해 내륙 깊숙이 들어가 선교했다. 당시 선교사들은 교회와 1㎞ 쯤 떨어진 입포 포구에 내렸다. 이것이 부여지방 구령의 시작이었다.

오량교회 동산에선 그 입포 마을이 한눈에 보인다. 포구는 그 기능을 상실해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그 자리엔 수해방지 목적의 높은 강둑이 들과 마을을 보호한다.

“우리교회 공식적인 설립은 1898년이나 실제로는 1891년 일 것으로 추측됩니다. 1891년 무렵 우리 교회 영수를 지낸 고내수라는 분이 예수를 영접했다는 구술이 전해지거든요. 1967년 발간한 교회요람의 연혁보고에 ‘1898년 3월10일자로 고내수 영수를 책임자 앉혔다’는 기록이 있어 이 해를 설립연도로 잡았습니다.”

당회장 김대순(50) 목사의 설명이다. 19세기 말 레놀즈(한국명 이눌서) 드루(유대모) 전킨(전위렴) 불(부위렴) 등이 전라도 지방에 복음을 전하면서 당시 군산권이었던 부여 논산(강경)권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들은 범선을 타고 금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서천 부여 지역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것. 전킨과 불은 각기 오량교회 2, 3대 교역자로 이름이 올라가 있다. 1대는 그 기록을 찾지 못했다.

입포, 즉 지금의 양화면소재지가 있는 입포리는 개신교 유입 창구이자 개화의 중심이었다. 상류의 큰 시장 강경까지 13㎞, 하류 군산까지 23㎞로 금강의 배후 습지가 개간되면서 형성된 마을. 전북 익산시 웅포면 제성리를 연결하는 갓개나루였으나 1900년 전후로 수산물 시장이 형성돼 활기를 띠면서 근대 도시 기능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1912∼18년 일본강점기 조선토지조사 사업으로 개간에 의한 토지생산력이 높아지면서 근대식 면사무소 순사주재소 우편소 등이 시장(市場)을 떠받쳤다. 군산까지 연락선이 정기 운항됐을 정도. 교회 앞 샛강인 입포천변에 도정공장 미곡상 노동조합 어업조합 곡물검사소가 들어섰고 음식점 양복점 잡화상 여인숙 유흥업소 등이 따라서 번성했다. 전근대적 객주와 근대적 조합이 공존하던 강점기 충남 남부 개항장이었던 셈.

입포가 충남의 근대 도시로 잘 알려진 논산의 강경 포구보다 앞섰다고 보면 된다.

입포가 번창하던 1905년 무렵 오량교회 교인이 300명에 달했다. 이미 장로회공의회 전라대리위원부는 오량교회를 선교 기지 삼아 전도를 강화했고 이에 부응해 현 옥산교회 청포교회 지석교회 성산교회 마명교회 오덕교회 등을 분립시켰다.

당시 부여 강경 권역은 전라도선교부에서 담당했다.

일제의 신사참배가 노골화된 1937년 이전까지 하리슨(하위렴), 프랑스 선교사 ‘떼씨부인’ 등도 이 교회를 축으로 순행하며 선교해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환란도 뒤따라 1918년부터 불기 시작한 충남 지방의 배교사건으로 오량교회와 관장하는 분립교회에 분쟁이 따랐고, 일제가 발악을 하던 1943년 창씨개명 등으로 오점을 남기기도 한다. 뼈아픈 마디다. 오량교회뿐 아니라 대부분의 한국 교회가 안은 상처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교회는 지역 모교회로서 구제와 선교의 사명을 놓지 않았다. ‘전주 농민복음학교에 5000환을 돕기로 하다’ ‘서천에서 개강하는 성경학교에 수조미 2말을 지원하다’ ‘온양 109병원과 안양 성노원에 각각 2000환을 지원하다’ 등 40∼50년대 당회록 곳곳에 기록이 남아 있다. 그 전통은 지금도 이어져 최근 서천 아름다운교회 건축비로 1000만원을 지출했다. 목사 사택과 교육관을 지으려고 모은 돈인데 선교가 더 급하다고 본 것이다. 소위 ‘착한 사마리아 주일’로 불리는 구제 행사의 일환이다.

한데 교회 성장의 배경이 되는 입포는 50년대 말 육상교통의 발달로 기능을 잃는다. 게다가 어업협동조합이 생기면서 영세어민의 대부 역할을 했던 객주들이 강경으로 몰리면서 상권을 그곳에 내주고 만다. 토사도 한 원인이었다. 90년 금강하굿둑 준공으로 내수면어업도 타격을 받아 한촌(閑村)이 되고 말았다.

교회는 1962년 지금의 자리에 교회당을 헌당했다. 마을 안쪽에서 동산으로 이전한 것이다. 조선소나무를 배경으로 구릉에 자리 잡은 교회당의 모습이 너무 예뻐 보는 이들마다 탄성을 자아냈다. 지금은 교회 뒤 땅 소유주가 소나무를 잘라내 옛 모습보다 감흥이 덜하나 여전히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김의배(71) 장로는 “내가 군대갈 무렵이었는데 저 아래 신작로 주변서 모래를 이곳까지 퍼 날라 교회당을 지었다”고 말했다. 김 장로는 딸 셋을 각기 선교사 전도사 사모로 키웠다. 인천 주안장로교회 나겸일 목사와 오량교회학교를 같이 다녔다.

취락의 쇠퇴에 비해 교회는 여전히 마을공동체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양화면 내 12개 교회 가운데 유일하게 유년부와 중고등부가 운영된다. 한때 지금의 교육관 자리에 교회 병설 유치원도 운영했었다. 90여명의 출석교인 모두가 고도 부여 사람답게 신앙의 뿌리를 자랑한다.

교회 앞 ‘오량교회설립백주년기념비’. ‘조선말 선교 탄압과 일제의 잔악한 신앙의 박해와 전쟁의 아픈 상흔과 혼란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어 그 열기 온 장안에 퍼져 주변에 수많은 곳에 교회를 세우니 복음의 성지여라’고 음각되어 있다.

부여=글 전정희 기자·사진 곽경근 선임기자 jhjeon@kmib.co.kr

오량교회 가는 길

서울 남부터미널서 오전 6시30분부터 오후 7시20분까지 30분 간격. 동서울터미널에선 1∼2시간 간격. 2시간 20분 소요. 각기 부여터미널 하차. 철도는 논산역에 내려 시내외버스 이용해 부여터미널 도착.

부여터미널에선 시내버스가 양화면소재지(입포)까지 1시간에 1∼2대씩 있다. 내리면 멀리 교회가 보인다. 충남 부여군 양화면 오량2리 63번지 오량교회(041-833-3629).

근처 맛집 웅어회 전문식당 ‘신흥옥’

“회를 정말 맛있게 무치셨네요!”

“뭘유! 몹시 시장하셨던가 보네유!”

주인 김영옥(74)씨는 무심한 척 대답하지만 그리 싫지는 않은 표정이다. 충남 부여군 양화면소재지에서 금강 제방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웅어회 별미식당 신흥옥(041-833-3015)이 자리하고 있다.

충청도와 전라도에서 우어 혹은 우여로 불리는 이 생선의 표준어는 웅어. 청어목 멸치과로 길이 30㎝ 안팎의 은빛 물고기. 연어와 같이 산란을 위해 바다에서 강으로 거슬러 올라오는데 4∼5월 사이에 잡는 웅어를 최고의 상품으로 친다. 기름기가 많으면서도 담백하고 아작아작 씹히는 식감과 더불어 고소한 뒷맛 또한 일품이다. 나머지 계절에는 냉동해 두었다가 상에 올린다. 백제 의자왕이 보양식으로 즐겨 먹었고, 조선 말기에는 ‘위어소(葦漁所)’를 두어 왕가에 진상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

주인 김 할머니는 25세에 시집왔다. 이미 30년 넘게 우어회 식당을 운영해 온 시어머니와 함께 회를 썰기 시작했던 것. 따라서 대략 따져도 80년이 된 전통식당이다.

우어는 뼈째 송송 썰어 초장에 찍어 회로도 먹지만 대부분 향긋한 미나리에 오이 당근 양파 등 각종 채소를 넣고 새콤달콤하게 무쳐 먹는다. 또 날김에 싸 먹기도 하고, 적당히 먹다가 양념에 비벼서 집된장으로 끓인 구수한 된장찌개와 함께 먹는 맛 또한 잊을 수 없다.

금강 하구가 큰 둑으로 막히기 전, 이 넓은 식당 안은 늘 뱃사람들로 북적북적했다. 그 시절에는 우어뿐 아니라 황복 장어 참게 그리고 각종 어패류까지 온갖 수산물이 풍부해 메뉴도 다양했고 돈도 넘쳤다. 이제는 뱃길이 끊기고 고깃길도 막히면서 단골손님 외에는 찾는 발길이 줄었다.

부여군 양화면 입포리 84-15. 우어회 3만∼5만원, 복매운탕 1인분 1만5000원, 생선찌개 시가.

글·사진=곽경근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