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은미희의 마실] 당신의 선택은?
입력 2011-06-22 17:57
배가 부르다. 다들 어렵다고 아우성칠 때 배가 부르다니 참으로 행복할 일이다. 왜 그러지 않던가. 살기 위해 먹거나 먹기 위해 산다고. 우선순위가 무엇이든 간에 먹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배가 부르다는 것은 오늘 하루도 잘살았다는 말일 터. 하긴, 배가 부르다고 잘살았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을 것이다. 육신의 배가 부르듯 영혼의 배도 불러야 잘살았다고 할 것이다. 어쨌거나 배가 부르니 기분도 느긋해진다.
요즘 들어서 자주 롤러코스터를 타듯 감정이 불안정했었다. 이런 나를 걱정했는지 친구가 만나자고 전화를 걸어왔다. 그 친구는 습작시절의 동인으로 벌써 20년 넘게 함께해오고 있는 절친 중의 절친이다. 나는 친구의 전화를 받고 흔쾌히 약속시간을 잡았다. 당장에 할 일이 많았지만 그런 기분으로는 진도가 나가지 않을 게 뻔한 일이었으므로 기분전환이라도 하자며 약속장소에 나갔다. 게다가 그 친구를 본 지도 오래돼 꽤 궁금하던 차였다.
육신의 배 부르듯 영혼의 배도 불러야
메뉴는 고등어구이였다. 먹으면서 우리는 잠시 일본발 재앙 때문에 웃는 낯으로 찜찜해했다. 하지만, 그렇게 가리고 들자면 세상에 먹을 게 어디 있겠느냐며 기왕에 먹는 거 행복하고 맛있게 먹자했다. 정말, 우리는 행복하게, 맛있게, 배부르게 먹었다. 빵 한 조각을 얻기 위해 아침부터 고된 노동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렇듯 한가하고 여유롭게 기름진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었으니 어찌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한데 먹는 이야기는 커피 한 잔으로 입가심하는 자리로까지 이어졌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우리의 이야기는 그네를 뛰었다. 방사능 식품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이문을 얻자고 먹을 것에 양심을 속이는 사람들에 분개해 했고, 기상천외한 가짜 음식들에 감탄해 마지않았다. 갈치 속이 들어가지 않은 갈치속젓에, 무게를 속이자고 냉동 수산물에 물이나 쇳조각을 넣는 거며, 보다 더 먹음직스럽게 보이기 위해 공업용 색소를 섞는 일이며 열거하자니 끝이 없었다.
어디 그뿐일까. 사람들이 비싼 돈을 지불해가며 찾는 음식점도 우리의 입살을 피해가지 못했다. 유통기한이 지난 식재료에 위생 상태가 엉망인 주방과 요리사들. 그리고 유치원에서는 아이들에게 오래돼 먹을 수 없는 음식을 나누어 주었다는 뉴스는 우리의 한숨을 이끌어냈다. 다행히 이런 일들이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그 소식들이 들려올 때면 가슴에 쏴하니 한기가 든다. 나 역시 보다 더 풍요롭고 안락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 그런 탓에 늘 마음이 강퍅해지곤 한다. 하지만 나를 속이고, 남을 속여 얻는 이문은 진정한 행복이 아닐 것이다.
내가 아는 어떤 언니는 우연찮은 기회에 어릴 적에 끔찍하게 싫었던 것 가운데 하나를 들려줬다. 그러니까 식사 때가 되면 거지들이 집으로 찾아오곤 했는데, 그 언니의 모친은 그들을 내쫓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집으로 불러들여 정갈하게 상을 차려 내놓는다고 했다. 그 언니는 그게 싫어 밥을 먹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던 모양이다. 하지만 모친은 아랑곳하지 않고 귀한 사람 대접하듯 그렇게 상을 차려냈다고 했다. 한데 더 대단한 일이 그들에게 상을 내가면서 이 음식을 먹는 사람이 부디 복을 받아 잘살기를 소망했다고 한다. 또 내가 아는 한 미용실 주인은 찾아오는 손님의 머리를 손질할 때 이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가득하기를 기도한다고 했다. 참으로 가슴 따듯한 이야기가 아닌가.
나눔으로… 베풂으로… 더 행복해지기
한데 함께 밥을 먹은 그 친구가 바로 그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 친구는 그랬다. 나뿐만이 아니라 누구든 집으로 불러 음식을 만들어 먹이고, 잘 먹는다 싶으면 따로 싸서 가방에 넣어주곤 했다. 불편하고 번거로울 텐데도 그 친구는 싫은 표정 한 번 짓지 않고 그렇게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 내놓았다. 그게 행복하단다. 삶은 그런 거 같다. 많이 가져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나눔으로, 베풂으로 더 행복해지는 것 같다. 하지만 아는 것도 어렵지만 실천하기는 더 어렵지 않던가. 전자처럼 자신만의 행복을 위해 사는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후자의 경우처럼 남을 배려함으로써 행복을 느끼는 이가 될 것인가. 각자가 선택할 문제다. 그럼 나는 무얼 선택하지?
■ 대표작 ‘비둘기집 사람들’ ‘만두빚는 여자’. 2001년 삼성문학상 수상. 광주(光州)순복음교회를 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