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책임투자펀드 ‘이름’이 부끄럽다

입력 2011-06-21 22:02


SRI(Social Responsibility Investment·사회책임투자)펀드. 말 그대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다. 통상 재무제표 외에 친환경적인 생산·경영을 하고, 사회에 이익을 환원하며, 기업지배구조가 투명한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일반적인 ‘원칙’으로 알려져 있지만 국내 SRI펀드의 실상은 이와 거리가 있다는 평가다.

올 들어 SRI펀드의 평균 수익률이 국내 주식형펀드보다 3배 가까이 높아 투자자들의 관심을 사고 있지만 포트폴리오를 들여다보면 대형주 및 시가총액 상위주 일색이다. 국내에 출시된 지 5년이 넘도록 투자 기준이 불명확하고 일반 주식형펀드와 포트폴리오 차별성도 떨어져 ‘이름만 SRI’라는 지적도 나온다.

◇‘사회책임=사회공헌이 전부?’=21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포트폴리오를 공개한 국내 SRI펀드를 대상으로 투자종목을 분석한 결과(3월 말 기준), 대형주가 81%로 대부분을 차지했고 중소형주는 19%에 불과했다. 특히 수익률 상위 펀드들의 투자종목을 살펴보면 삼성전자, 현대중공업, OCI, LG화학 등 유가증권시장에서 시가총액이 수위를 다투는 종목 일색이다. 대기업 투자 비중이 높다보니 올해 대형주 위주의 장세에서 좋은 수익률을 거두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연초 이후 SRI펀드의 평균 수익률은 3.29%로 일반 주식형펀드(0.53%)보다 월등히 높다.

일반 주식형펀드와 포트폴리오가 비슷한데도 수익률이 더 나은 점에 대해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그만큼 SRI펀드가 주식형펀드보다 대형주 편입비중을 높게 가져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즉 SRI펀드의 ‘차별화된 투자원칙’이 있다기보다는 리스크가 적은 종목에 투자해 초과 수익을 냈다는 얘기다.

SRI펀드의 대형주 위주 포트폴리오 구성은 5년 전과도 다를 게 없다. 이와 관련해 현재 SRI펀드를 운용 중인 한 자산운용사 담당자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에 대한 투자 기준이 국내에서는 모호한 편”이라며 “사회 공헌을 많이 하면서 이익도 괜찮은 대기업 위주로 편입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국민연금 역할 중요”=전문가 및 업계 관계자들은 유럽, 미국 등 선진국처럼 사회책임투자 기준에 부적합한 기업은 과감히 배제하고, 미래 가치에 중점을 둔 기업을 발굴하는 식으로 국내 SRI펀드가 발전하려면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SRI펀드 전문 리서치기관의 한 임원은 “2005년 국민연금이 SRI펀드 운용을 위탁한다고 해 ‘붐’이 일었는데, 자산운용사들이 서로 선정되기 위해 수익률에 사활을 걸었다”며 “SRI펀드 투자 원칙을 제대로 세우고 있는 운용사는 드물다”고 말했다. 실제 국민연금의 SRI펀드 투자 규모는 올해 2조8000억원을 돌파했지만 일반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공모 SRI펀드 설정액은 전체를 합쳐도 8000억원 수준이다. 그는 “자산운용사들이 국민연금의 SRI펀드 위탁에만 관심이 있지 자체 SRI펀드 운용은 모양새만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 외국의 경우 환경 파괴를 가져오거나 인권이 착취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해당 기업에 대해 연기금이 먼저 SRI펀드 편입을 배제하고 나서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사례가 거의 없다.

숭실대 장범식 교수는 “환경이나 인권 문제에서 논란이 된 기업들은 SRI펀드 편입이 배제되는 등의 투자 풍토가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